어린 물살들이 먼 바다에 나가 해종일
숭어새끼들과 놀다 돌아올 시간이 되
자 마을 불빛들은 모두 앞다퉈 몰려나
와 물길을 환히 비춰주었다.
와온, 이라고 했다. 단어에서 풍기는 결이 곱다. 여기 등장하는 ‘와온’은 한 지역의 이름이다. ‘동쪽으로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서쪽으로는 고흥반도와 순천만에 접해 있는 해변 이름’이라고, 시인은 작품의 말미에 설명해 놓았다. 우리는 또 이렇게 하나의 시를 통해서 가보지 않은, 혹은 가보았던 어떤 장소를 알게 된다.
막 휴가에서 돌아온 당신은 이미 저 바다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막 푸른 바다를 상상한 당신은 저 바다를 회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모두는 저 바다를 알고 있다. 와온에 살았든, 가봤든, 혹은 아예 모르더라도 우리는 이미 저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
어린 것들이 실컷 노닐 수 있는 세계. 아무도 그 어린 것들을 해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세계. 우리의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삶을 익히는 세계. 때가 되면 나아가고, 때가 되면 돌아오는 세계.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을 기꺼이 지지하는 세계.
시인이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금세 알았다. 그중에서 가장 닿고 싶은 점은 어린 물결들보다 불빛 편에 있다. 마을의 불빛이, 제각기 제 일을 하다가, 다투어 나와 어린 것들을 비춰준다는 말이 참 좋다. 불빛이 제 곳간이나 마당만 비추지 않고, 어린 것들을 향해 너도 나도 수호의 빛을 전해준다는 말은 더 좋다. 저 불빛은 어떤 표정일까. 흐뭇하고 인자한 엄마 미소, 아빠 미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런 어른 불빛이 많아서 어린 물결은 숭어 떼와 놀 수 있었고, 더 먼 바다에 나갈 수 있었다.
시를 읽으며 우리는 아직 꿈꾼다. ‘와온’, 이라고 불렸던 저 바닷가의 일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어린 것을 지켜주는 불빛과, 불빛의 마음을 채워주는 어린 것들의 세계를. 가고 싶고, 닿고 싶고, 이루고 싶은 저 먼 바다의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