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처럼 애틋한 기억이 소용돌이치네
한강다리에서 흐르는 물살을 볼 때처럼
막막한 실업자로 살 때
살기 어렵던 자매들도 나를 위한 기도글과 함께
일이만 원이라도 손에 쥐여주던 때
일이십만 원까지 생활비를 보태준 엄마의 기억이
놋그릇처럼 우네
내주신 전셋돈을 갚겠다 한 날
엄마 목소리는 뜨거운 메아리로 되돌아오네
“살기 힘들어도 그 돈을 내가 받을 수는 없는 거다”
엄마의 말들은 나를 쓰러지지 않게 받쳐준 지지대였네
인생은 잃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받았다는 추억이 몸이 어두운 때 불을 밝히고
물기 젖은 따스한 바람을 부르네
사람에게 언어가 처음으로 생겼던 때는 언제일까. 맨 처음 말은 정보 전달이 필요해서 생겨났을 것이다. 생겨난 이후로 말은 늘 인간과 함께해 왔다. 말의 뿌리는 사람이다. 언제고 말은 우리와 함께 살았고, 우리처럼 다양해졌고, 우리만큼 성장했다.
사실만 전달하던 말은 어느새 우리의 마음까지 전달하게 됐다. 사물만 지칭하던 말은 어느새 감정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내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할 때 우리는 등을 쓸어주면서 작고 짧은 말을 얹는다. 말 조각이 가여운 네 마음에 들어가 실낱같이 지지해주기 바라면서. 그러면서 있는 힘껏 나의 말을, 아니 마음을 띄워 보낸다.
우리는 ‘마음이 된 말’을 이 시에서도 본다. 시인 신현림은 처음에 ‘애틋한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실업자가 돼 막막했던 시절, 가난한 엄마는 가난한 나에게 돈을 보태줬다. 생활비의 일부를 보내줬고, 집 전세비를 보내줬다. 돈이 펑펑 남아서 보내준 것이 아니었다. 엄마 몫을 덜고 덜어서 겨우 마련해 준 돈이었다. 엄마의 빤한 사정을 아는 딸은 매번 미안하고 죄송했을 터. 그런데 돈을 갚으려고 하자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했다. 귀하고 아까운 딸이 어떻게 번 돈인데,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극한 사랑이 말에 담겨 딸에게로 갔다. 정작 어머니는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입에서 떠난 그 말이 여태껏 딸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이 스산할 때 어머니의 말은 살아남아 군불이 됐다. 마음이 조각조각 찢겨나갈 때 어머니의 말은 되돌아와 지지대가 됐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을 뒤적뒤적 해본다. 우리에게도 이런 말이 있을까. 인생의 불이 되어 주는 환하고 위대한 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