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있으라
평안 있으라
포레의 레퀴엠을 들으면
햇빛에도 눈물난다
있는 자식 다 데리고
얼음벌판에 앉아 있는
겨울 햇빛
오오 연민하올 어머니여
평안 있으라
그 더욱 평안 있으라
죽은 이를 위한 진혼 미사곡에
산 이의 추위도 불쬐어 뎁히노니
진실로 진실로
살고 있는 이와
살다간 이
앞으로 살게 될 이들까지
영혼의 자매이러라
평안 있으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오늘보다는 ‘내일’이라는 말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이 오늘을 무사히 마감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길 바라게 된다. 우리가 새해를 숱한 소원으로 시작하는 이유도 다 ‘사랑’ 때문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니까 나의 내일이 찬란하기를 바라는 거고,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그 사람의 새해가 아름답기를 기원하는 거다. 무릇 새해란 어여쁜 소망으로 시작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새해의 벽두는 더 좋은 내일보다는 덜 슬픈 내일을 기원하면서 시작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더는 슬프거나 무서운 소식이 없길 바라는 마음. 내일을 기대하기보다 내일을 걱정하는 새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2018년의 우리는 평안한 시대와 평안한 마음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김남조 시인의 이 시를 골랐다. ‘평안을 위하여’라는 작품이다.
아마도 시인은 어느 겨울날, 진혼곡을 듣고 있는가 보다. 진혼곡은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이자, 죽은 사람을 보내고 남은 자들의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 주변에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슬픔을 나눈다고나 할까. 그 안에서 시인은 살았던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살아날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서로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할 수도 없다. 다정한 믿음 속에서 모두 평온해지시라, 세상 제발 평온해지시라. 시인의 이 기원이 올해에는 꼭 이뤄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