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빈방으로 넘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
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
역력히 보입니다 대쪽 같은
임강빈 선생님이
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겨울 바람처럼
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입니다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이 시는 부끄러움에 대한 시다. 여기서의 부끄러움은 수줍음과 다르고, 숫기 없는 것과도 다르다. 그보다 훨씬 더 엄정하고 무거운 종류의 부끄러움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염치’다.
염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염치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음의 도리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은 염치 감각이 희미하다. 감각이 없다기보다는 염치를 쉽게 외면한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너그럽고 남에게는 뻔뻔하다. 반대로 양심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바른 마음을 근거로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은 염치에 밝다. 이들은 남들의 치명적 결점보다 자신의 사소한 결점에 괴로워하고, 반성을 통해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바로 최하림 시인의 이 시가 염치를 지닌 인간의 바른 자세를 보여준다. 시를 읽으면 예민한 염치의 마음, 인간답기 위한 몸부림,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환한 달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시인은 지난 과오를 낱낱이 들킨 듯 참회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큰 결격 사유나 비난 받을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마음의 도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지나간 매 순간을 아쉬워하고 부끄러워했다.
어디에 명확히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되면서 도리를 알게 되고, 도리를 지키면서 또한 사람이 되어 간다. 지킨다고 해서 크게 표 나지 않고,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벌 받지 않지만 도리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물론 요즘 세상에 염치를 아는 사람이 많기야 하겠냐마는 염치 있는 인간은 오래, 은근히 아름답다. 마치 마음에 묻은 먼지마저 달빛에 탈탈 털어내는 저 시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