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 싸락눈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눈
연일 그 추위에 몹시 볶이던 보리
그 참한 포근한 속의 문득 숨을 눅여
강보에 싸인 어린애마냥 고이고이
자라노니
눈 눈 눈이 아니라 보리가 쏟아진다고
나는 홀로 춤을 추오
예전의 어린이들은 추워서 볼이 트고 손등이 갈라져도 밖으로 놀러 다녔다. 가난한 집 아이도 부잣집 아이도 겨울 놀이에서는 공평한 편이어서 다들 썰매타기를 하고 쥐불놀이를 했다. 그렇게 직접 경험하면 겨울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풍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 생태계는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다 살아 있다.
자연을 많이 겪으면 자연을 읽는 눈이 달라진다. 사람이 자연에게 가까이 가면, 자연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연과 사람은 퍽 아름답고 가까운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 시처럼 말이다.
가람 이병기라는 이름을 들으면 참 옛날 분이시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근엄해 보여 공감 불가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보리’라는 시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상큼하다. “눈, 눈” 하고 시작하는 부분이 퐁퐁 내리는 눈송이처럼 읽힌다. 게다가 눈이 오는 마당에서 춤추는 시인을 생각해 보라. 눈이 오네, 신이 나네. 이렇게 덩실덩실 신이 난 할아버지 시인을 상상하면 그 순수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 시인은 왜 신이 난 걸까. 시인은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가을에 심어둔 보리를 떠올리고 있다. 겨울 보리는 차디찬 겨울 땅 밑에 있다. 시인은 땅속에서 보리가 아기처럼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눈이 오면 보리 아가에게는 따뜻한 눈이불이 생긴다. 이불을 덮은 아가는 더 잘 자라겠지. 그러니 보리와 보리 농사꾼에게 눈은 좋고 감사한 것이다.
눈이 오면 보리가 보인다니 얼마나 멋진가. 눈 속에서 신날 일 있는 시인이 부러울 지경이다. 올겨울에는 우리에게도 눈이 멋진 무엇으로 보이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