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 것의 베개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노신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 호마로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어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이 시는 1947년에 발표되었다. 무려 70년 전의 작품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입장에서도 시의 상황은 전혀 구식이 아니다. 심지어 낯설지도 않다.
지금, 30대의 남성이자 가장은 ‘생계유지’ 때문에 걱정이 많다. 고민이 어찌나 많은지 잠조차 이룰 수가 없다. 눈앞에는 아내와 어린 자식이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어떻게든 책임져야 하는데 가족을 어떻게 먹이고 입힐까 대책이 안 선다. 가장은 결코 빈둥거리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먹고사는 문제는 도통 해결되지 않는다. 앞으로 뭘 먹고 사나. 이렇게 시름은 깊어 가는데 겨울눈은 남의 속도 모르고 소복소복 쌓여만 간다. 고민으로 지새우는 겨울밤은 유독 더 길다.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고민은 70년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아니, 오늘날에는 더하다. 다만 ‘시’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로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꿈’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젊음’만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사랑’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우리에게는 믿고 살아가고 싶지만, 믿고 살아가기 어려운 덕목들이 점차 늘어난다. 쓸쓸하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두들겨 맞아 정신은 피곤해지고, 마음의 에너지가 줄어드는 광경이 이 시에는 보인다. 가난한 마음의 지지대를 찾아 시인은 먼 곳의 한 위대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시인은 애써 노신이라는 등불을 마음속에 켜냈다. 시를 믿고 어찌 살아가나 고민했지만 시인은 끝까지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오늘에도 먹고사는 일이 참 치사하다 싶다가도 이런 등불이라면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겨울 세상에 마음의 등불마저 없다면 더욱 깜깜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