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가을이 되면 소개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넣어 두었던 시가 이 작품이다. 이상국 시인의 이미지 자체도 쓸쓸하면서도 꽉 찬 느낌이어서 가을의 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데 작품 중에서도 ‘국수가 먹고 싶다’는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가을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국수가 국수답게 먹히는, 이런 가을 말이다.
제목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이 시는 국수 예찬론처럼 비치지만, 절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 시는 울고 싶다는 말의 국수 버전, 즉 눈물 대신 삼켰던 국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을은 풍요한 계절이기도 하지만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하늘은 깊어서 더 멀어 보이고 가을 노을은 울음처럼 붉어서 마음의 응어리를 꺼내 놓은 듯하다. 바람은 차가워 빈손은 더욱 허전해져만 가고 이래저래 허전한 마음이 더욱 황량해지는 때가 요즘이다. 그런 가을의 심사, 꼭 계절적으로 가을이 아니래도 지극히 가을스러운 심사에 대해 이상국 시인은 ‘허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삶은 언제고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울고 웃는 순간의 연속이다. 이 시를 쓰게 된 날은 아마도 우는 날에 해당했나 보다. 시인은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게 되었다고 썼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식으로 마음을 다치고 보니 잘난 사람, 이긴 사람보다 조금 부족하고 역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처럼 순박하고 속이 훤히 보여서 남을 속이지도, 잘 이기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시인은 그런 사람들 곁에서 뜨겁게 울고 싶다는 말을 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로 대신했다. 서글프게도 나이가 들면 마음껏 울지도 못한다. 눈물 대신 콧물을 흘리며 뜨거운 국수를 먹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