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후미진 골짜기에
긴 팔을 내려
잠든 새 깃털 만져주는 달아
이리 빈 가슴 잠 못 드는 밤
희디흰 손길 뻗어
내 등 쓸어주오
떨어져 누운 낙엽
달래주는
부드러운 달빛으로
이번 추석에는 무슨 소원을 빌까. 달 중에 제일은 보름달, 보름달 중에 제일은 추석 보름달이니 올해 보름달이 휘영청 밝기라도 한다면 소원 빌기에 흥이 나겠다. 많은 이들이 가족의 바람과 자신의 소원을 댈 참이다. “우리 가족 건강하면 좋겠어요.” “고생한 큰딸 취업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부모는 자식 걱정, 자식은 부모 걱정해주라고 보름달은 추석에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여기 달에 소원을 비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이때는 소원보다 조금 더 넓고 은은한 말, ‘기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달님, 달님, 내 소원을 들어주세요”가 아니라 시인은 “달아”라고 호명하면서 시작한다. 사람이 달에게 쏘아 올리는, 일방향적인 희망사항이 아니다. 시의 등장인물은 달의 친구이거나, 달과 대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마치 대지가 달과 나누는 대화의 일부처럼, 이 시에는 울림이 있다. 그만큼 자애롭고 풍성한 목소리가 들어 있다.
시인은 말한다. 달은 후미진 골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부잣집 곳간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삽짝까지 비춰주는 것이 달님이다. 또한 시인은 말한다. 달은 깨어 있는 것과 잠든 것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어리고 약한 것을 가리지 않고, 잠들고 평화로운 것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달님이다.
마지막 구절은 어쩐지 눈물겹기까지 하다. 달은 떨어진 낙엽까지 비추어준다니, 그것도 미련하고 못났구나 탓하지 않고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달래준다니. 이런 달이라면 하늘에만 있어서야 될까. 우리 사는 거칠고 소중한 땅 위에도 여럿 있으면 좋겠다. 김후란 시인의 시 덕분에 추석에 떠올릴 소원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