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 … …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시는 ‘그 풍경’에서 시작된다. 대체 어떤 풍경인지 잘 보이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상상력은 풍부해지는 법이다. 여기서의 ‘그 풍경’은 상상하는 모든 사람의 것, 바로 당신 가슴속의 그 풍경이 된다.
짐작건대 이 풍경이란, 춥고 위태롭다. 이 시 어디에서도 풍요롭다는 느낌, 단단히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풍족한 자원과 든든한 뒷배가 아니라 가난한 서로의 존재였다. 이를테면, 네가 거기 있으니까 위안이 되었다는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위안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서로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 온기로 인해 살 수 있었다. 시인은 그것을 서로가 서로의 신이 되어 서로를 구원하는 풍경이라고 읽었다. 그리고 황량한 터전에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일러, 시인은 ‘혁명’이라고 불렀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다른 누군가는 격동과 붉은 피를 떠올릴 것이다. 혹자는 녹두 장군과 임꺽정을, 또 혹자는 체 게바라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혁명의 핵심은 역사에도 혁명가에도 있지 않다. 혁명의 심장은 희망이며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의 시대를 희망하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혁명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이 혁명이라면 이것은 완료될 수 없는 것이다. 희망이 혁명이라면 이것은 그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기꺼이 ‘무한한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 세 번 봐도 멋진 표현이다. 무한한 사랑과 희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