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이라는 시는 단 세 줄로 되어 있다. 어쩐지 말이 부족할 듯도 싶다. 하지만 읽고 나면 여기에 무슨 말을 더 얹어야 좋을지 찾기 어렵다. 짧지만 여운이 깊다. 오히려 짧기 때문에 생기는 장점도 많다. 외우기 쉬운 데다가 시의 여백이 많아 행과 행 사이사이에 내 인생, 네 인생의 장면들이 끼어들기 좋다.
이 시는 인생의 여름을 맞이한 젊은이들보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지내는 사람들에게 더 간절하게 읽힐 작품이다.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꽤 살아온 덕에 삶과 육체의 내리막길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이 시의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인생의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오르는 것만을 생각한다. 저기 머나먼 정상 위에는 아주 중요한 목표 몇 가지만이 빛나고 있으니 그것을 향해 직진하지 않을 수 없다. 올라가야 하는 마음이 절실할 때에는 급하기도 하고, 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먼 곳의 환한 빛을 따라갈 때는 발밑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정상의 별을 땄든, 따지 못했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내리막길은 찾아온다. 별을 향해 뻗을 튼튼한 팔과 다리는 굽어지고, 사회적인 나이와 육체의 나이는 제멋대로 늘어만 간다. 그럴 때는 꼭 사람의 삶이 부스러져서 점차 폐허가 되어가는 듯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원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려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시는 큰 위로가 되어 준다. 시인에 의하면 내려가는 것은 지는 것도, 잃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새로운 국면일 뿐이다. 게다가 내려갈 때에는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꽃을 발견한다는 말은 사람이 고개를 숙일 줄도 알고, 허리를 굽힐 줄도 알고, 작고 고운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가을과 겨울, 내리막길의 어느 때는 크게 황량한 것만은 아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귀한 무엇이 있어 내려갈 때 하나씩 찾는 삶은 쓸쓸하지 않다. 그렇게 찾아낸 꽃들은 인생의 보물 상자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