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견디는 그만큼
내가 서 있는 세월이
행복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들은 나더러
더 멋지다고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네요
하늘을 잘 보려고
땅 깊이 뿌리 내리는
내 침묵의 언어는
너무 순해서
흙이 된 감사입니다
하늘을 사랑해서
사람이 늘 그리운
나의 기도는
너무 순결해서
소금이 된 고독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해인 수녀를 좋아할까. 왜 그의 시를 좋아할까. 간단하다. 맑고 깨끗해서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의 시는 위안을 선사해 준다. 특정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사람의 언어는,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도닥여 준다. 힘들고 지칠 때, 무기력하고 답답할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힐링’의 키워드가 시대의 이슈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삶과 시는 사람들에게 힐링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자도 사람이다. 그라고 왜 힘들지 않겠는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니까 그도 아프다. ‘나무가 나에게’는 바로 그, 아픔에 대한 시인의 고백을 담고 있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참았다고 말한다. 나무가 울지 않고 깊이 뿌리 내리는 것처럼 시인 역시 그렇게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의 뿌리란 인내와 사랑과 감사다. 나아가 그 뿌리는 언어이고 기도이며 시다. 무엇도 쉽게 태어나지는 않는 법. 이제는 이해인 수녀가,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시가 왜 좋을 수 있는지를 참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