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파 등불 끄고 어둠 속에 앉았는데, 역풍에 인 파도가 뱃전 때리는 소리.
(把君詩卷燈前讀, 詩盡燈殘天未明. 眼痛滅燈猶闇坐, 逆風吹浪打船聲.)
―‘배 안에서 원진(元유)의 시를 읽다(주중독원구시·舟中讀元九詩)’ 백거이(白居易·772∼846)
간관(諫官)도 아닌 터에 주제넘게 상소했다는 죄명으로 시인은 장안에서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남하하는 배 안에서 등잔 불빛이 시들어 가도록 시인이 탐독한 책은 원진의 시집. 시와 문장을 왜 쓰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지음(知音)을 자처할 정도로 의기투합했던 사이이니 그가 원진의 시집을 잡은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눈의 통증도 잊고 새벽이 가깝도록 내처 읽었고, 등불을 끄고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원진의 시편들을 재음미라도 하는지, 아니면 좌천 길에 오른 자기 처지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어둠을 지키고 있다.
시인이 굳이 원진의 시집을 읽으려 했음 직한 이유는 또 있다. 원진이 자기보다 수개월 앞서 이미 장안에서 쫓겨나 사천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니 동병상련의 소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심전심의 소통이 이뤄진 때문일까. 백거이의 좌천 소식을 들은 원진 역시 시 한 수를 짓는다. ‘빛 잃은 등불 가물대는데, 이 밤 들려오는 그대의 좌천 소식. 죽어가는 병든 이 몸 놀라 일어나니, 어둠 속 비바람 들이치는 차가운 창.’ 한 사람은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가, 한 사람은 차가운 창에 몰아치는 비바람이 심란하기만 하다. 아득히 떨어진 두 사람이 제각기 혼잣말처럼 쏟아낸 말이건만 마치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듯 둘의 마음이 포개져 있다. 둘 사이를 오가는 마음속 화답(和答), 그 너머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려는 뭉클한 우애가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