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달린 병(病) 착한 몸이 대신 앓아
뒤척이는 새벽 나는 많이 괴로웠구나
마흔셋
알아내지 못한
내 기호는 무엇일까
생의 칠할은 험한 데 택하여 에돌아가는 몸
눈물이 따라가며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마음은
긴 편지를 쓰고 전하지 못한다
첫 구절이 어쩜 이렇게 공감될까. 시인은 병을 앓는 마음과, 그 마음을 염려한 착한 몸의 이야기로 시를 시작한다. 착한 사람들은 대개 부정적인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다. 이때 부정의 에너지는 마음의 병을 일으킨다. 마음 힘든 상황이 잦아지는 사회니까, 마음병이 몸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아가고 있다. 시인에게도 그런 상황이 있었나 보다.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은 끙끙 병을 앓았고, 착한 몸이 마음 대신 아파 주었다.
시를 읽으면 ‘아, 나도 마음이 힘들어서 몸살 났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이 떠올랐다면, 손을 들어 자기 몸을 토닥토닥 해주면 좋겠다. 몸살 났던 우리 몸은 병든 마음을 외면하지 못할 정도로 착한 몸이었던 것이다. 이어 시인은 마음대로 조정되지 않는 마음과, 그 마음 따라 힘들게 사는 몸을 이야기한다. ‘사는 것은 참 힘들구나’라는 한숨이 시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러면서도 이 마음과 몸의 이야기는 참 다정하기도 하다. 아니, 시인이 몸과 마음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정하다고 해야 옳겠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사태를, 시인은 눈물이 몸을 위로해 주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따라오며 “괜찮아, 괜찮아” 말해주는 눈물은, 이제 보니 고맙기까지 하다.
이 작품은 시조다. 깜짝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조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웅얼웅얼 입속에서 어떤 리듬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시조의 묘미구나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대시조다. 아주 오랜 시간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시조는 묵묵히 시조가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