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아이들 옹기종기 땅따먹기하고 있다
배고픈 것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영수야, 부르는 소리에 한 아이 흙 묻은 손 털며 일어난다
애써 따놓은 많은 땅 아쉬워 뒤돌아보며 아이는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 다시 둘러앉아 왁자지껄 논다
땅거미의 푸른 손바닥이 골목을 온통 덮을 즈음 아이들은 하나둘
부르는 소리 따라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은 여전히 머리 맞대고 놀고
부르시면, 어느 날 나도 가야 하리
아쉬워 뒤돌아보리
동네 아이들이 모여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손에 흙이 묻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가 고픈 것도 잊었다. 모두 쪼그리고 앉아 돌로 자기 땅을 넓히는 데 열중해 있다. 참 정겨워 보인다. 정겨울 뿐만 아니라 참 그립기까지 하다면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땅따먹기가 보편적인 놀이였던 때는 이미 꽤 과거의 일이다. 동네 아이들이 너나없이 모여서 밥 먹기 직전까지 놀던 것도 꽤 지난 일이다. 이 시의 아이들이 아이들이었던 시절에는 차가 별로 없었고, 흙이 보이는 땅이 많았다. 땅따먹기는 그래야 가능한 놀이다.
그런데, 이 시의 진짜 목적은 추억이 아니다. 과거가 더 좋았다는 말도 아니다. 그보다 더 크고 운명적인 것, 이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이 모여 땅따먹기 하는 일은 지상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 제각기가 자기 몫을 가지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그 모습을 더 멀리에서 바라본다면 열심히 땅따먹기 하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한창 놀다가도 엄마가 ‘영수야, 밥 먹어라’ 부르면 일어나야 한다. 승자였든 패자였든 돌아가야 한다. 영수만 돌아갈까. 모여 앉은 모든 아이들은 다 돌아가야 한다. 삶을 사는 우리들의 인생도 이와 같다. 그것이 삶의 법칙이다.
권지숙 시인은 1975년에 등단하고도 시집을 내지 않았다. 35년 만에 첫 시집을 냈는데 이 시는 그 시집 안에 들어 있다. 그는 35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시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짐작하게 된다. 떠날 때가 오면 후회하지 않고, 아쉬운 듯 돌아보며 떠나겠다고 했다. 덤덤한 미소가 가능한 것은 아마 35년, 잘 꾸려온 시간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