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고
안개 짙은 날엔
내가 등대가 되마
넘어져 피 나면
안 되지
안개 속에 키 세우고
암초 위에 서마
네가 올 때까지
밤새
무적을 울리는
등대가 되마
이 시는 지하철 역사, 투명한 유리창 위에 적혀 있다. 그 전에는 한 성실한 시인의 작은 시집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시는, 당신의 마음 안에 정성스럽게 적혀 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힐링’이 나쁘다고 말한다. 힐링이라는 것이 일종의 산업이 되면서, 치유는커녕 어려운 이의 주머니만 축내기 때문이다. 나아가 힐링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불만을 삭이고 순응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모든 힐링이 나쁜 것도 아니고, 순응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네가 올 때까지’를 읽으면서는 ‘좋은 치유’를 만나게 된다. 이 치유는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마음만 내면 된다. 그리고 마음과 관심은 힘을 얻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시의 내용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몹시 우직하고 따뜻하다. 한 사람이 어디선가 등대가 되어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사랑을 주는 ‘한 사람’이나 사랑을 받는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잊었던 주위를 돌아보면서 내게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생각 끝에 나를 비춰 준 등대를 확인하면 마음이 확 뜨거워진다.
우리에게 등대 같은 사람이 아주 많다.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걱정해 문가를 서성이는 부모가 등대다. 일하러 간 부모를 생각해 혼자 숙제하고 열심히 양치하는 아이도 등대다. 아프지 마라 토닥이는 손길이 등대다. 이 여러 등대가 서로를 비추면 안개는 무섭지 않고 암초도 두렵지 않다.
이건청 시인의 시는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 시를 읽는 것이 아무래도 어려운 시대라지만, 시에는 분명 그러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