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첫 구절이 탁, 하고 마음을 때리는 시다.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病)에 정든다니. 어떻게 저런 표현을 생각해 냈을까. 그런데 시인은 굉장히 시적인 말을 애써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저 첫 구절은 살면서 실제로 경험한 바를 그대로 써 놓은 것이다. 지나치게 삶 그 자체인 한 구절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상황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에게는 기댈 것이 없었을 것이다. 기댈 것만 없었다면 다행이지. 정붙일 것마저 없었나보다. 가난보다 더 가난한, 고난보다 더 고단한 그런 삶이었다는 말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몸을 둘 곳은커녕 마음 둘 곳마저 없는데, 이제 몸도 아프기 시작한다. 몸이 아프니 마음마저 황폐해지고, 몸과 마음이 아프니 세상은 어둡게만 보인다. 가진 것은 빈 몸뚱이 하나뿐이어서 어떻게든 이 녀석을 달래고 얼러 같이 가야겠는데 몸마저 말을 듣지 않으니 가진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 되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이런 때에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손을 잡아 준다면 하고 바라보지만 병 말고는 다가오는 것이 없다. 참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이 시에서는 진하고 질긴 아픈 냄새가 난다. 어두컴컴한 방이 슬프게만 보인다. 시인은 오래전에 저 시를 썼는데 정든 병만 품고 사는 사람은 오래전의 시인만은 아닐 것이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 존재한다. 불행히도 이 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그렇다. 다시 읽어봐도 첫 구절이 탁, 하고 마음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