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되는 시 ‘귀천’으로 유명하다. 더불어, 사람들을 만나면 소주 사먹게 100원만 달라고 졸랐다는 일화도 유명해서 천상병 시인 하면 천진함과 어눌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천상병은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사람이었다.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일본어는 물론 미국 통역관을 맡을 정도로 영어도 잘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1967년 옥살이와 고문을 겪으면서 인생의 방향이 틀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1971년에는 거리의 행려병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소릉조’라는 작품은 바로 그 즈음, 시인이 아픈 몸과 마음으로 여기저기 떠돌 때의 것이다.
몸은 상하고 집도 돈도 없는데 추석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추석이 되면 고향에 가야지. 시인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이 시에서 말하는 고향은 경남 창원의 진북이다. 그곳에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니 보러 가야 하는데 갈 길이 없다. 여비가 없는 탓에 형제도 만날 수 없다. 이때 가난은 서러움이 되고 외로움은 배가된다. 이때 시인은 막막해하며 ‘두보’를 떠올린다. 한평생 객지를 떠돌며 시를 썼던 두보의 호가 ‘소릉’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보처럼 외롭고 가난한 마음이라 해서 제목을 ‘소릉조’로 붙였다. 쉽게 풀이하자면 가난한 추석의 노래인 셈이다.
추석의 풍성함이 가을 햇살 같다면,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추석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고, 일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고, 일도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천상병의 ‘소릉조’를 읽는다. 45년 전의 외롭고 슬픈 추석과 오늘의 외롭고 슬픈 추석을 잊지 않기 위해 ‘70년 추석에’라는 부제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