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은 볼 때마다 빈집
저 까치 부부는 맞벌이인가 보다
해 뜨기 전 일 나가
별 총총한 밤 돌아오는가 보다
까치 아이들은 어디서 사나
시골집 홀로 된 할머니에 얹혀사나
허공에 걸린 빈집
심심한 바람이나 툭툭, 발길질하고
달빛이나 도둑처럼 들렀다 가고
‘엄마가 섬그늘에’로 시작하는 ‘섬집 아기’라는 자장가가 있다. 사실 이 노래를 부르다보면 섬집 아기가 다칠까 조마조마할 뿐만 아니라, 끝에 꼭 눈물이 나는 바람에 오히려 잠이 달아나기 일쑤다. ‘섬집 아기’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구절을 꼽자면 아마도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라는 부분일 것이다. 사실 이 상황에 ‘설렌다’는 예쁜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일 나간 엄마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떠올리는 것은 고통이나 충격을 받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심장은 쿵쿵거리고 가슴은 요동쳤을 것이며 불안과 걱정에 마음이 동요되었을 것이다. 어느 때건 아기의 울음소리는 엄마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엄마와 아기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부모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까치집’이라는 시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매일 보는 까치집 하나, 늘 텅 비어 있는 새집 하나였다. 대개 무심히 보고 지나치는 그것을 시인은 여러 번 관찰했고 생각했다. 그 결과 또 다른 ‘섬집 아기들’을 조명해 냈다. 이 경우에는 단지 엄마와 아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슬픔은 더욱 넓게 퍼져간다. 이재무 시인의 까치집 주위에는 일하는 엄마, 일하는 아빠, 여전히 육아를 맡는 할머니, 부모가 그리운 아가들의 슬픔과 고단함이 골고루 묻어 있다. 까치집은 작지만 거기서 파급되는 쓸쓸함은 많은 사람에게 두루 걸쳐져 있다. 그래서 ‘허공에 걸린 빈집’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까치집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내 집, 그 집, 우리 집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기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기와 떨어져서 일을 해야만 한다. 이 상황이 슬프고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많은 부모들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은 후라면, 비어 있는 까치집을 볼 때마다 걱정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수도 있겠다. 굴 따러 나간, ‘섬집 아기’의 엄마가 그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