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네 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 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저녁 홀로
등불을 켜 드는,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
‘사모곡(思母曲)’이라는 말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작자를 알 수 없는 고려의 노래라고 나온다. 다시 말해 사모곡은 특정 노래의 제목인 셈이다. 하지만 ‘사모곡’이라는 말의 주인은 고려 때 불리던 그 노래 하나만이 아니다. 생각할 ‘사(思)’에 어머니 ‘모(母)’, 즉 어머니를 생각하는 노래는 다 사모곡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게다가 어머니를 기리는 시는 퍽 많기도 하다. 시인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모든 자식에게 어머니는 가장 절대적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모곡 중에서도 오세영 시인의 시를 골랐다. 시는 독자를 울려야지 제가 울면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사모곡은 우는 시가 되기 쉬운데 이 시는 울지 않는다. 대신 한 아들의 전 생애에 걸쳐 있는 어머니의 의미를 잔잔하고 아름답게 펼쳐놓았다.
시인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품을 모르고 자랐다. 그 어머니의 삶은 오죽 팍팍했으랴. 아이의 눈에도 어머니는 외롭고 시렸는가 보다. 그는 일곱 살 적 어머니를 ‘하얀 목련꽃’으로 기억했다. 어머니는 한때 눈물짓는 ‘봉선화’였다가 아들의 곁을 지키는 ‘국화꽃’이기도 했다. 꽃으로 기억되는 어머니는 복되어라. 그런데 그 어머니는 이제 돌아가시어 하늘의 별과 바람이 되셨다. 봄의 목련 어머니, 여름의 봉선화 어머니, 가을의 국화꽃 어머니는 사라졌을까. 아들은 어머니가 마음 안에 여전히 살아 계신다고 말한다. 잃고도 잃지 않았다고 쓰는 이 마음이, 잃었으나 잃지 않아지는 그 마음이 참으로 절절하다.
절절함은 시인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든 그것을 알거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 상실의 절절함에 닿지 않은 자식이라면 어머니를 한 번 더 안아드리라, 이 시가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