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은
나뭇잎이 지는 밤이다
생각할수록 다가오는 소리는
네가 오는 소리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소리다
지금은
울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가만히 어머니를 생각할 때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듯
내가 별을 마주서면
잎이 진다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서
또 가까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여름이 끝나간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누구든 직감하고 있다. 직감할 뿐만 아니라 기다린다. 가을은 서둘러 와서 우리의 뜨거운 이마를 식혀줄 것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줄 것이고 차분하고 고독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송영택 시인의 ‘소녀상’은 그런,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기에 더없이 적절한 작품이다.
시를 보자. 낙엽이 지고 있는 것을 보니 가을이 무르익었다. 게다가 가을 더하기 홀로 있는 밤이라니, 이런 시간은 가을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별 아래, 낙엽 아래 누군가가 너를 기다리며 머물러 있다. 이 모든 조건들이 더해져서 고적하기 짝이 없는, 진정한 가을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시를 쓴 송영택 시인은 1930년대에 출생한 시인이다. 그는 가을을 누구보다도 잘 표현한 시인인 릴케의 가장 훌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송 시인은 평생 시를 썼고 단 한 권의 시집만 냈다고 한다. 여러모로 독특한 이력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총 6편의 ‘소녀상’을 썼는데 여기 실린 작품은 그중에서 첫 번째 작품이다. ‘소녀상’을 창작할 때 시인은 가을의 노래가 되라고 만들었을 것이다. 가을의 노래로 썼으니 가을의 노래로 소개했지만, 자꾸만 가을보다는 한 ‘소녀상’의 노래로 읽히는 것은 시인의 탓이 아니라 시대의 탓이다. 울고 싶은데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고 있는 어린 소녀의 동상을 우리는 무척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을에는 그 소녀들을 다시 생각하기를, 이 시는 또 다른 독해를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