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이성선(1941∼2001)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빛나네.”
아이를 앉히고 동요를 불러주면 예쁜 입이 오물오물 따라 부른다. 그렇지만 너무 미안하다.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줄 수는 있어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아서다. 어느 하늘에 별이 있느냐고, 아이는 금방 자라 물어볼 것이다. 도대체 별이 반짝이긴 하느냐고, 응당 아이는 물어볼 자격이 있다. 어른은 대답이 궁색하여 난감하다. 난감할 때는 속으로만, 아이에게 술과 가난을 설명하기란 더 난감하니까 속으로만, 이성선의 이 시를 읊어 보리라.
이성선 시인은 ‘맑음’에 특화된 시인이다. 맑음 중에 으뜸은 ‘별’이니까, 이 시인은 별에 특화된 시인이기도 하다. 높고 맑은 것을 즐겨 노래했던 이 시인을, 세상에서는 ‘설악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설악산 아래에 살았는데, 마치 높은 산이 도시의 욕망 같은 것을 차단해 주는 듯이 시를 쓰고 살았다.
하지만 세상에 돈이 좋고 명예가 좋은 줄 모르고 살았을까. 세속적 욕망이 드세질 때, 시인은 휘청거리며 밤거리를 걷는다고 썼다. 가진 것 없어 세상에서 홀대받을 때, 시인의 마지막 보루는 오직 ‘별빛’뿐이었다. 저 별빛에게 부끄럽지 않는 한, 시인은 아직 진 것이 아니다. 별만큼 깨끗하지는 못해도 지상에서 가장 덜 더러운 사람이 되겠다, 시인은 마음을 표백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윤동주의 시를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별에 관한 시 중에서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렇게 고결하게만 고결을 노래한 시를 읽으면 초라함은 위로받고 욕망은 추악한 몰골을 드러낸다. 어느 쪽이든,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밤을 지내기에 이 시는 더없이 적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