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레 오진 라일락 꽃송이, 향낭(香囊)처럼 그 향기가 봄 길에 그윽하다. 이름마저 한자로는 정향이다. 한시에서 라일락의 이미지는 주로 여인의 순정 혹은 선비의 고결한 지조로 형상화된다. ‘라일락 가녀린 몸매, 아슬아슬 가지 위에 버티고 있다’거나 ‘매화와 봄을 다투는 법 없이 고즈넉이 봄비를 머금고 있다’가 그런 예다.
시에서 꽃과 시인은 한 몸이다. 강변 한갓진 곳에 자리 잡은 라일락,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으니 유유자적 속세를 벗어난 내 인생과 판박이다. 봄이 깊어지면서 이젠 한껏 가지도 뻗고 겨우내 몸속에 머금었던 꽃망울을 터뜨릴 차례. 춘색을 발산하는 라일락을 빌려 자신의 포부를 세상에 펼치고픈 염원을 담고 싶었으리라. 혹 저만치 외떨어져 가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라일락처럼 저만의 향기와 자태를 지키자는 다짐일 수도 있겠다. 시 속 라일락은 그래서 세속적 욕망이면서 동시에 오연(傲然)한 반속(反俗)으로도 읽힌다. 제3구의 ‘결(結)’은 이 시의 시안(詩眼), 그것은 라일락의 꽃망울이자 동시에 시인 내면에 도사린 응어리다. 그 응어리는 세상을 향한 간절한 열망으로든, 고결한 품격으로든 그저 풀려나기만을 기다린다.
육구몽은 수차 과거에 낙방한 후 향리에 머물며 전원시와 사실적 산문을 주로 창작했다. 옛 문인으로는 드물게 농학자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농사일에도 밝아 농기구와 차에 관한 저술까지 남겼다. 누대에 걸친 관료 집안 출신답게 세상사에 아예 초연하지는 못했던 듯, 루쉰(魯迅)은 그를 ‘한시도 세상일을 잊지 않았던, 진흙 연못에 잠긴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