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삶아 국 끓이는데/메주 걸러 국물 낸다.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콩알은 솥 안에서 눈물 흘린다.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거늘/어찌 이리도 다급하게 졸여대는지.
煮豆持作羹,漉菽以为汁。
萁在釜下燃,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相煎何太急?
―‘칠보시(七步詩)’(조식·曹植·192∼232)
삼국시대 위왕(魏王) 조조(曹操)에게는 시문에 뛰어난 두 아들 조비(曹丕)와 조식이 있었다. 특히 조식은 ‘천하의 재주를 한 석(石)으로 친다면, 그중 8할은 조식의 것이다’라는 칭송이 따를 정도로 시재가 출중했다. 조조 역시 그런 아들을 유난히 총애해 당초 그를 태자로 책봉하려 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조식의 기질이 못 미더워 결국 조비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조비가 문제(文帝)로 등극한 이후 조식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1년 동안 세 차례나 봉지(封地)를 옮겨 다녔고, 형의 엄중한 감시 아래 온갖 박해를 받다가 40세에 우울증으로 목숨을 거두었다.
이 시는 조비의 핍박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조식은 일곱 걸음 안에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극형에 처할 것이라는 형의 협박을 받자 이렇게 읊조렸다. 시는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의미심장하고, 비유 또한 기발하다. 콩대를 땔감으로 삼아 콩을 삶는 일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일종의 ‘동족상잔’이다. 이 시가 체념 혹은 원망을 담은 읍소(泣訴) 그 이상인 이유는 시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연의 등 후대의 기록에는 시의 앞 2구가 빠진 채 4구로만 소개되는데, 최초로 이 시를 수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지금처럼 전체 6구로 되어 있다. 어쨌든 이 시는 생생한 비유도 그러려니와 단숨에 지어낸 문학적 순발력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