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인재가 산림에 은거하면 소은(小隱), 혼잡한 시정 속에서 담담하게 살아가면 중은(中隱), 관직에 있되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 그걸 대은(大隱)이라 했다. 도가에서 말하는 진정한 은자의 모습은 대은의 삶이었다. 백거이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속세로 나온 듯 초야에 묻힌 듯, 바쁜 듯 한가한 듯 살겠노라’ 천명하면서 그것을 중은이라 명명했다. 대은이란 게 원래 도가 사상의 산물이니, ‘중용되면 벼슬을 하되 그렇지 않으면 자기 수양에 힘쓴다’는 유가적 관료 입장에서는 차마 대놓고 대은을 표방하지는 못했으리라. 이 시는 쉰여섯쯤, 그가 관직에 있을 때 지은 것인데 그 후에도 근 20년을 더 관직에 머물렀다.
길조든 흉조든 세상이 넓든 좁든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법. 시인은 얕은 능력과 지혜를 다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지를 자문자답처럼 되뇌고 있다. 세상살이란 어쩌면 알량한 재주를 겨루며 아등바등 밑도 끝도 없는 싸움터를 헤매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허방지방 나대면서 분주히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억지로 수식을 욱여넣거나 관념적 시어를 동원하지 않고 달관의 철리(哲理)를 시구에 담아내는 재주, 이게 백거이 시의 미덕이다. 이 시는 전체 5수로 된 연작시 가운데 제1수, 제2수에서도 시인은 “달팽이 뿔 같은 공간에서 무얼 다투랴. 부싯돌 번쩍하듯 순간에 맡겨진 이 몸, 부유한 대로 가난한 대로 즐기면 그만, 허허 웃어넘기지 못하면 이자가 바보”라 했으니, 부박(浮薄)한 우리네 삶을 문득 되짚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