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술은 오늘로 취하고/내일 근심은 내일 하면 되지
(得卽高歌失卽休, 多愁多恨亦悠悠. 今朝有酒今朝醉, 明日愁來明日愁.)
―‘스스로를 위로하다(自遣·자견)’(나은·羅隱·833∼909)》
제목 그대로 자기 위안의 노래다. 친구에게 건네는 권유로 읽어도 좋겠다. 얻고 잃는다는 게 대수인가. 크게는 입신양명과 실패, 작게는 주변으로부터의 인정과 소외, 굳이 그걸 세상살이의 득실이라고 이른다면 쪼잔하게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어차피 끝없는 근심과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 안달복달한다고 허방(구덩이)을 피해 갈 수 있던가. “오늘 술은 오늘로 취하고, 내일 근심은 내일 하면 되지”에는 마음 느긋해지는 유쾌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를 더 유쾌하게 하는 건 그 가락이다. ‘금조-유주-금조취/명일-수래-명일수’, 평이한 한자도 눈에 익숙하려니와 동일한 어휘가 반복되면서 리드미컬하게 입에 감기는 맛이 절묘하다.
한시에서 외견상 달관의 처세와 여유를 드러낼 때, 역설적으로 그것이 자기 삶의 간난(艱難·힘들고 고생스러움)을 분출한 경우가 많다.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유가 사대부의 전형적인 인생관이자 상투적 발성법이기도 하다. 나은이라고 예외였을까. “12, 13년 과거에 몰두하느라, 그 좋던 자연풍광 다 놓쳤네”라는 시구를 남겼듯 그는 끈질기게 과거시험에 도전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그 역시 도가적 느긋함 저편에 유가적 집착 같은 걸 감추고 있었다. 그는 재상들의 인정을 받을 만큼 시문에 출중했지만 성품이 괴팍한 데다 주로 상류사회에 대한 풍자와 조소를 다루었기에 인생의 ‘득’을 이루진 못했다. 풍자적 예언을 담은 그의 저술 ‘참서(讖書)’에 대해 루쉰(魯迅)이 ‘그 내용 대부분이 항쟁과 격분의 소리’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