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해 도무지 인간과 친해지기 어려운 동물 쥐. 시에는 ‘큰 쥐’가 등장했고 화자는 그놈을 3년씩이나 섬겨 왔다고 말한다. 3은 ‘오래’ 혹은 ‘자주’를 뜻한다. ‘큰 쥐가 내 기장을 먹는’ 행위는 지배층의 가렴주구를 겨냥한 직설이다. 원시 민요답게 문학적 기교 대신 절박한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추었다. 섬김이 배신당하고 반항이 무기력하다고 느꼈을 때 그 유일한 대안은 도피다. 화자는 비명처럼, 고해성사처럼 ‘낙원이여’를 반복하는 것으로 삶의 공포와 고통을 절규한다. 단순성으로 더 간절하고 호소력이 강렬한 게 민요의 속성이겠다. 이 노래는 모두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2, 3장에서도 큰 쥐는 ‘내 보리’와 ‘내 모종’을 먹어치운다고 노래했다. 이 민요의 가창자는 시인 김지하가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고 한 효용성을 까마득히 오래전에 이미 체득하고 있었을 터다.
이 시는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에 등장하는데 기원전 5, 6세기 무렵 민간에서 불렸다. 민중의 불온한 선동 같기도 한 이런 노래가 어떻게 봉건 전제군주 지배하에서도 수천 년 이어질 수 있었을까 싶겠지만, 기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민요를 통해 민심을 살피고 정치적 득실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실용적 목적이 따로 있었다. 시제 ‘석서’는 시의 첫 낱말을 딴 것이고 위풍은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민요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