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으면서 문득 세월의 속도감을 어림해 본다. 인생살이를 낙관하거나 비관하는 데 따라 그 속도가 다르지 않겠지만 세월의 흐름에 무심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그 삶이 팍팍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낙천(樂天)이라는 시인의 자(字)가 그래서 더 어울릴 성싶다. 이름 거이(居易)도 풀어 보면 ‘쉽게 사는 인생’ 같아서 낙천에 버금간다.
하지만 이 시가 지어진 때는 시인이 멀리 남쪽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어 있던 시기. 그는 자기 직분을 잊고 주제넘게 직언했다는 게 빌미가 되어 조정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말이야 ‘근심도 즐거움도 없다’지만 그 심정이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았으리라. 혼탁한 중앙정치에 실망한 나머지 세월에 자신을 방임하는 일종의 체념이거나, 권력자들의 터무니없는 비방에 대한 불만을 애써 삭이려는 자위일 수도 있겠다.
백거이의 시가 처음부터 세상사에 초연한 듯 달관으로 일관한 건 아니었다. 젊은 시절 황제 곁에서 간관(諫官)을 지낼 때 지은 시는 오히려 이런 도가적 면모와는 딴판이었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고 정치적 폐단을 고칠 수 있다면 직설적 상소에 더하여 시로써 황제에게 알리겠다고 했고, 실제 그의 풍자시를 접한 권력자들은 안색이 변하고 눈을 부라리고 이를 갈며 증오하기도 했다.
좌천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이후 시인은 불경과 도가서를 통독했고 술과 음악과 산수에 탐닉했다. ‘얼굴에 근심과 기쁨의 기색 드러내지 않고, 가슴으론 시시비비를 깡그리 없앤’ 채 세속의 욕망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