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도록 머리 빗질조차 미적대고 있어요.
풍경은 그대론데 사람은 가고 없으니 만사가 다 허망할 따름.
마음을 털어놓으려니 눈물부터 흐르네요.
듣기로 쌍계의 봄 아직도 좋다 하니, 그곳에 가벼운 배 하나 띄우고 싶어요.
하지만 쌍계의 작은 거룻배, 많고 많은 내 수심의 무게는 못 견딜 거에요.
(風住塵香花已盡, 日晩倦梳頭. 物是人非事事休. 欲語淚先流. 聞說雙溪春尙好, 也擬泛輕舟. 只恐雙溪舴艋舟, 載不動許多愁.)
- ‘무릉춘(武陵春)’이청조(李淸照·1081~1141?)
(풍주진향화이진, 일만권소두. 물시인비사사휴. 욕어루선류. 문설쌍계춘상호, 야의범경주. 지공쌍계책맹주, 재부동허다수.)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치자 봄꽃은 속절없이 스러진다. 바람이 멎자 비로소 감지되는 흙내음, 낙화가 스민 뒷자리에 향긋한 기운이 번진다. 계절은 어김없이 오가고 풍광은 예나 다름없지만 그대 내 곁에 없으니 모든 게 그저 허망하기만 하다. 하여 몸단장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우두망찰 저무는 봄을 바라보고만 있다. 울적한 심사를 토로하려 해도 왈칵 눈물부터 쏟아지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듣자 하니 쌍계 개울은 아직도 봄빛이 좋다고들 하니 그곳에 배 띄우고 노닐면 행여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아서라, 조그마한 배 하나가 무슨 수로 내 깊고 무거운 수심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의 걸출한 여류시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청조. 여진족의 금나라에 북송이 멸망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며 유랑의 길에 나섰다. 피란지에서 평생 금석문(金石文·쇠붙이나 돌에 새긴 문자)과 고서화 연구를 함께 했던 첫 남편과 사별했고 재혼과 이혼도 경험했다. 시는 저무는 봄날에 대한 아쉬움에 빗대어 빛바랜 인생의 봄날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다. 개인적 불행과 시대적 아픔이 시인의 고적(孤寂) 너머에 절묘하게 아우러져 있다. ‘무릉춘’은 사(詞)라는 운문 형식에 사용된 곡명으로 시제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