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토목 기술의 발달] 로마 인은 학문이나 예술 면에서는 그리스 인들을 따르지 못하였으나, 실제 생활에 필요한 건축·토목 같은 분야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들은 건축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그리스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지만 차츰 '아치'를 사용한 독특한 양식을 개발해 수많은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들이 남긴 신전·개선문·원형 경기장(콜로세움)·공중목욕탕 등의 장대한 건축물은 지금도 경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또 그들은 사방으로 뻗은 도로를 닦고 도시의 수도 시설을 갖추었는데, 이들 대규모의 토목 공사에도 놀라운 솜씨가 담겨 있다.
[로마의 법률] 로마의 문화유산으로서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법률이었다. 12 동판법(12표법)에서 비롯된 로마법은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시민법'이었으나, 로마 제국이 성립됨에 따라 제국 안의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는 '만민법'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 로마의 모든 법률을 모아 만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로마법 대전)》이 편찬되어 후세의 여러 나라 법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업적] 동로마 제국의 황제(재위 527~565년)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반달 왕국과 동고트 왕국을 정복하고 발칸 반도에 침입한 훈 족·아바르 족·슬라브 족 들을 몰아내어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트리보니아누스로 하여금 법률 편찬 위원회를 조직하게 하여 《유스티니아누스 법전(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게 하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기원전 117년경 로마 제국 최고 전성기의 판도는 동쪽의 카스피 해 연안에서부터 서쪽의 에스파냐까지 그리고 북쪽의 브리타니아(영국)에서부터 남쪽의 북아프리카에까지 미쳤다. 그동안 유럽 중남부·북아프리카·서아시아에 로마가 세운 도시는 방대하여 지금도 로마 이름의 지명이나 도시 이름이 각지에 남아 있는데, 영국의 수도 런던은 로마 군이 건설한 런디니움의 시초라고 한다. 이 밖에도 이러한 예들은 프랑스의 오랑즈·아를르, 에스파냐의 세고비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로마는 우선 군사상의 필요에 의해서 로마와 이들 식민지를 잇는 도로를 만들었다. 이러한 도로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할 만큼 길고 수가 많았다. 그리고 이 도로는 로마가 망한 후에도 남아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