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독립 운동] 19세기에는 자유주의의 발전에 따라 민족주의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민족주의는 한 민족이 단결하여 강대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이루겠다는 운동으로 프랑스 혁명 후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 오던 중남미를 중심으로 유럽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식민지 정책에 불만이 컸던 중남미 사람들도 본국이 나폴레옹에게 점령된 틈을 타서 독립을 꾀한 것이다. 결국 '남아메리카의 워싱턴'이라고 불리는 볼리바르의 지휘 아래 아르헨티나·칠레·페루·멕시코·브라질 등이 잇따라 독립을 선언하였다.
[강대국의 반응과 먼로주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빈 회의의 정신을 내세워 4국 동맹의 군대를 보내 독립 운동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중남미의 식민지가 독립하는 편이 자국의 무역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간섭에 반대하였다. 또한 미국의 제5대 대통령인 먼로도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이외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 대신 유럽의 나라들도 아메리카 대륙의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하여(l823년) 중남미 각국의 자유와 독립을 옹호하였다. 이 선언을 먼로주의라고 하는데 이것은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과 독립 직후의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대한 유럽으로부터의 간섭에 대처하기 위해 내놓은 방침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미국 외교 정책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스의 독립] 16세기부터 튀르크의 통치를 받아 오던 그리스는 1821년 입셀란테스의 지도로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초기에는 메테르니히의 방해로 전세가 불리하였으나 당시 유럽에 퍼진 낭만주의와 고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는 지식인들이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그리스 인들을 도왔다. 또한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가 그리스 정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튀르크를 공격하였고 영국·프랑스도 이에 협조하였다. 결국 1829년 러시아와 튀르크 사이에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 화약(和約)이 맺어지고 그리스는 독립을 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