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배에 담긴 달콤한 포도주, 마시려는 순간 비파 소리 흥을 돋운다.
술 취해 모래밭에 눕더라도 비웃지 마라. 예부터 전쟁터에서 몇이나 살아 돌아왔더냐.
(葡萄美酒夜光杯, 欲飮琵琶馬上催. 醉卧沙場君莫笑, 古來征戰幾人回.)
―‘양주의 노래(양주사·涼州詞)’ 왕한(王翰·생졸미상 당 중엽)
전장을 누비는 변방 장수, 쉬 만날 술자리가 아닐진대 모처럼 흠씬 한번 취해 볼 참이다. 설령 술에 취해 모래벌판에 쓰러진대도 사람들이여 날 비웃지 마시라. 어차피 생사를 초월한 채 전장에 나선 몸. 전장이 곧 사지라는 걸 잘 아는 이 몸이 목숨에 연연했다면 애당초 나서지도 않았을 것을. 고급 술과 술잔, 비파 연주까지 동원한 건 술자리의 흥을 돋우려는 배려이겠거니 하면서도 한편으론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전별연임을 염두에 둔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 시는 한결 비장하고 결연한 분위기로 고조된다. 더러 비파 연주를 출전을 재촉하는 매정한 신호로 해석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호화판 주연을 마련한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에 대한 역대의 평가는 엇갈린다. 혹자는 자포자기의 울분을 토로한 반전(反戰)의 노래로 읽고, 혹자는 죽음도 불사하는 변방 장수의 용맹과 의지로 읽는다. 멜랑콜리한 감상(感傷)과 호쾌한 다짐이 겹친 듯 어긋난 듯 서로 경계를 넘나든다.
양주(涼州)는 중원의 서북쪽 관문인 간쑤(甘肅)성에 위치한 변경 도시. 서역과의 교류를 위한 실크로드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이 시처럼 변방 군사의 애환을 담은 시를 변새시라 부르는데, 병사들의 정서가 대개 향수나 전쟁에 대한 염증(厭症)으로 나타나는 반면 지휘관의 경우 우국충정과 전공 수립의 기개를 담는 경우가 많다. 당 초중엽에는 고적(高適), 잠삼(岑參), 이백 등이 다량의 변새시를 창작, 변새시파라는 이름까지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