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고 주름진 것을 뭐라 부를까?
가스 불에 올려놓은 국이 흘러넘쳐 엄마를 만들었다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것들의
목소리를 만져보려고 손끝이 예민해진다
잠든 밤의 얼굴을 눌러본다
볼은 상처 밑에 부드럽게 존재하고
문은 바깥을 향해 길어진다
엄마가 흐릿해지고 있다
자꾸만 사라지는 것들에게 이름표를 붙인다 (후략)
―임지은(1980∼)
1990년대 초반에 나왔던 고정희 시인의 유고 시집이 있었다. 제목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였다. 매우 상징적인 제목이다. 또한 고정희 시인이 남긴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강렬하기도 하다. 상징적이고 강렬한 것은 뇌리에 오래 남는다. 게다가 이 제목은 시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목수에게 나무가 재료인 것처럼, 사라짐과 그 흔적은 시인의 작업대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재료다. 시인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듣고 보고 찾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민한 감각과 정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이들은 징후를 통해 존재와 세상의 의미를 찾아 기록한다. 때로 그 기록은 슬프고 때로는 아름답다. 임지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는 알게 된다. 사라짐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쓸쓸하면서도 가깝게 이해되기도 하는구나. 어느 날, 가스 불에 올려놓은 국이 넘쳐 자국을 만들었다. 그것은 희미하며 곧 지워질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엄마를 떠올린다. 희미해지는 것에서 희미해지는 엄마의 얼굴을 찾아낸다. 이름을 붙이면 의미가 조금 더 오래 남아 있겠지. 사라질 게 안타까워서 시인은 이름을 붙인다.
이 시에는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는 과정이 은근하게 그려져 있다. 시인이 마치 어두운 길을 더듬거리는 것 같아 마음이 그쪽으로 쏠린다. 아마 그도 우리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사라지는 흔적을 붙잡지 못한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