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김경미(1959∼)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이 쓴 시조의 종장이다. 무려 고려 후기에 나온 작품이다. 그런데 700년 동안 잊히지 않고, 변하지 않은 건 비단 시조만은 아닌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시가 되었던 어떤 마음을, 오늘의 우리도 똑같이 느낀다. 때로 시는 시간을 넘어서 온다.
이조년의 ‘다정가’가 고려 말의 것이라면 김경미의 ‘다정가’는 오늘의 것이다. 원래 다정가는 봄의 노래다. 봄바람처럼 달콤하고 씁쓸한 감정이 다정이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봄날만큼 감정의 범람이 어울리는 때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계절의 징후를 잃어가는 현대인이어서, 다정가를 읽기에 시절이 중요치 않다.
흔히들 좋은 것이 많으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돈은 좋은 것, 그러니까 부자는 좋겠구나. 힘은 좋은 것, 그러니까 강한 사람은 좋겠구나. ‘다정하다’는 말은 정이 많다는 말. 그러니까 정이 좋은 것이라면 분명 ‘다정’ 역시 더 좋은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다정은 때로 병인 것처럼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정에 기대고 싶은 내 마음의 다정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은 좋은 것인데, 왜 다정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는 것일까. 왜 오늘날의 다정가는 달콤함을 버리고 쓰게만 느껴질까.
그 대답을 시인은 알았고, 우리 역시 짐작할 수 있다. 다정한 것이 약점이 되는 나날, 다정을 상처로 되돌려 받는 나날, 다정을 쓸모없다 여기는 나날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감정을 잘라내도 살 듯 말 듯 힘든 세상이 실감난다. 다시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다정가가 생겨난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다정해도, 마음 편하게 다정을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