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뜻과 음
孺 : 젖먹이 유, 子 : 아들 자, 可 : 옳을 가, 敎 : 가르칠 교
풀이
아이들은 가르칠 만하다는 뜻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를 칭찬하는 말이다.
유래
유방(劉邦)의 명참모 장양(張良)의 집안은 전국 시대 한(韓)나라에서 3대째나 재상을 배출한 명문이었으나, 6국이 진나라에 멸망한 뒤로 비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진나라와 시황제에 대한 장양의 복수심은 대단했다. 마침 시황제가 국내 순시 중에 박랑사(博浪寺)에 들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 장양은 기회가 왔다고 좋아했다.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이제 내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장양은 조국 한나라를 위해, 조상과 가문을 위해 시황제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가산을 정리하여 회양에서 힘을 쓰는 장사 한 사람을 하수인으로 고용했다. 드디어 거사의 날, 시황제가 박랑사에 도착했다. 숨어 있던 장사는 120근이나 되는 철퇴로 시황제를 때려죽이려고 달려들었다. 행사장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장사는 황제의 호위병 하나만 치는 데 그치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병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혹독한 추단을 당한 끝에 무사는 하는 수 없이 자백하고 말았다.
“소인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은 장양입니다.”
그러나 장양은 이미 회양에서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당연히 장양에 대한 전국 수배령이 내려졌는데, 그는 하비(下邳)로 달아나 이름도 바꾸고 딴 사람으로 행세하며 다음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양은 하비교(下邳橋)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한 노인이 저쪽에서 걸어오더니 신발 한 짝을 일부러 다리 밑에 떨어뜨리고는 장양더러 주워다 달라고 했다.
‘원, 별 괴상한 노인도 다 보겠군.’
장양은 이렇게 생각했으나, 얼른 보건대 노인이 예사 사람 같지 않아 보였으므로 시키는 대로 내려가서 신발을 주워다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발을 내밀며 장양더러 신발을 신겨 달라고 했다. 장양은 내심 불쾌했지만, 꾹 참고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신을 신겨 주었다. 그러는 장양을 내려다보던 노인은 빙긋 웃더니 쓰다 달다 한마디 없이 가버렸다.
‘예절도 모르는 영감 아냐.’
장양은 불쾌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저만치 가던 노인이 되돌아오더니 한마디 불쑥 던졌다.
“‘유자가교(孺子可敎)’ 로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닷새 후 이른 아침에 이 다리에서 나를 기다리게.”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그렇게만 말하고는 다시 훌쩍 가버렸다. 노인이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본 장양은 그 닷새째가 되던 날 다리께로 나가보았다. 그런데 노인은 먼저 와 있었다.
“어른보다 늦게 나타나다니, 이 무슨 버르장머린가!”
노인은 화를 내고는 내일 아침에 다시 나오라고만 말하고 가버렸다.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장양은 다음날에는 새벽같이 다리에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노인이 먼저 나와 있었고, 어제보다 더욱 화를 내면서 사흘 후에 만나자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사흘 후에도 노인은 아주 이른 새벽에 나간 장양보다 또 먼저 나와 있었고,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닷새 후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건 완전히 나를 시험하자는 것이구나. 좋아, 한번 해 보자.’
장양은 이젠 오기가 뻗쳤다. 그래서 닷새 후에는 거의 한밤중인 시각에 하비교로 달려나갔는데, 마침 그 날은 노인이 먼저 와 있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장양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나타날 만한 시간이 지나도록 노인이 오지 않는 것이다. 이건 완전히 사람을 병신 만들겠다는 수작이었나 싶어 혼자 씩씩거리고 있는데, 날이 훤히 밝아서야 노인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용서하시게. 지금까지 한 일은 그대의 인품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네. 역시 이 늙은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니었어.”
그러면서 노인은 장양에게 두툼한 책 한 권을 주며 말했다.
“이 책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게. 그리고 십 년 후 제북(濟北)의 곡성산(穀城山) 아래로 와서 나를 만나도록 하게.”
그런 다음 노인은 또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그 노인이 바로 황석공(黃石公)이었고, 장양에게 준 책은 그 유명한 강태공(姜太公)이 쓴 비전 병법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