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훼오도로프, 사무실 무당, 2001, 여러 재료
John Feodorov, Office Shaman, 2001, mixed media, variable dimensions (courtesy the artist).
아무래도 이 이벤트가 동네 축제 [homecoming – 미국서 고등학교 동창들이 매년 모여서 미식 축구 보는/하는 행사]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니 좀 더 연설을 개인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준비한 것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예술관은 제가 자라난 동에 위치해 있었고, 동네의 여전함과 급진적 변화는 제 혀를 자극했지요. 여름철 무더위와 미시시피 강 특유의 습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빵 굽는 벽돌위에 있는 풍경도 너무나 친근했죠. 고기 굽는 냄새는 아직도 술 빗는 곳의 악취와 마구 섞이고. 한 때 백인 다수이고 당당하게도 분리주의자였던 이 지역은 많이 [인종적으로] 섞이게 되었구.. 바로 풍覺?서쪽에 있는 쇼핑구역은 생명력 뛰어난 라티노 거점을 형성했고, 흑인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앞뜰과 뒷마당에서 고기 구워먹는 것과 더위를 피하는 것도 더 사람다와졌더라구. 오랫동안 북/남을 기준으로 분리되어있던 도시는 이제 남쪽의 깐깐하기로 소문난 동네에서까지 인종적으로 섞인 골목들이 생겼더라고.
예술관 내의 다양함도 그에 못지 않았어. 호화롭게 치장한 예술 애호가들과 동네 젊은이들이 꾸역 꾸역 몰려들고 연설자 목소리가 들리라고 선풍기를 고맙게도 (?) 꺼 주니.. 그 열기가. 난 어떻게 실생활이 인종의 어리석음과 폭력을 비웃고 몇몇 백인들이 사는 비백인 공간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리저리 회상을 내비쳤어. 연설이 끝나고 예술관 주인과 나는 바깥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며 동네가 얼마나 바뀌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 주인은 다인종 주민들의 연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날 즐겁게 해주었어. 그리고 우리는 무너져가는 벽돌 건물에 도착했는데, 여긴 아마추어 역사가들이 옛날에 지하 철도 [underground railroad – 노예 제도 시대 흑인들을 북쪽으로 빼돌리는 연결망] 의 거점으로 사용‰榮募 것을 증명한 적이 있어. 요즘 이곳 운동가들은 개발자들과 싸움이 한창이야 – 개발자들은 땅 좀 치우고 건물 짓자고 난리지, 운동가들은 여길 역사 보존 지역으로 만들자고 하지.. 노예 시대의 성스러운 비백인 공간이 이십일세기의 비슷한 공간을 형성하는데 일조한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