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현재 라구나 예술관 [Laguna Art Musem] 에서 2003년 6월6일 까지 전시중인 “백인성, 먼길의 구조[A Wayward Construction]”의 카탈로그를 위한 데이빗 뢰디거의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백인성의 정체성 정치역학과 문화이론을 모색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인 이 전시회는 세 부분 – “White Out [“백인은 나가라” 또는 “하얗게 닦았네”], “거울, 거울…” 그리고 “백인성의 회색화”로 나뉘었습니다. 뢰디거 교수님의 글은 이 중 두 번째 부분 [거울, 거울..]에 대한 입문입니다. 편집부는 이 글을 위해 도와주신 전시회 장 타일러 스톨링 [Tyler Stallings]님과 라구나 예술관의 스튜어트 바이어 [Stuart Byer]님 및 데이빗 뢰디거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라구나 예술관 (www.lagunaartmuseum.org) 협찬입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예술 세계에 발을 담갔을 때에, 열 살이 채 안되는 소녀가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를 남겼다죠. 그때 참말로 얼마나 백인성이 유리하고 유리하지 않은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내가 세인트 루이스 [Saint Louis] 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자그마한 예술관에 연설하러 갔을때 말이죠.. 때는 Ron Sakolsky의 최신 모음집 “초현실주의적 반란들” [Surrealist Subversions] 의 기념이였고, 난 1929년에 있었던, 세상을 백인주의를 넘어서 보려던 초현실주의 시도에 대해서 짤막한 연설을 준비했더레요. 아무래도 Yves Tanguy 님이 그린 것 같은 이들의 주요 작품 중 하나는 대서양이 아니라 태평양이 중심인 세계지도였어요. 이 지도를 보고 우리 아이가 “그거 왜 그리 후졌냐” 그랬어요. Tanguy 는 미국과 영국을 축소해버리고선 오세아니아를 확대했어요. 제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이 작품이 표현하는 세계를 바꾸지는 못했다면, 적어도 우리들이 얼마나 과잉개발된 백인 세상에 집착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