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7
통역사로 산다는 것
다행히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은행 한 군데로부터 최종 합격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분야가 다양하지만 금융에 관심이 있어 이쪽으로 특화하고 싶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초보 통역사로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이라 두 배는 더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처음의 중요함을 잘 알기에 여유가 있어도 좀체 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1주일에 4번씩 스터디를 이어가고 있다. 그 옛날 학원 스터디 멤버들과 함께. 싱숭생숭한 마음에 존경하는 이영경 교수님을 찾아뵙기로 한다. 20년 동안 무려 1000여 회의 국제회의를 진행한 베테랑이다. 교수님 얼굴을 마주 하고 “다 잘될 거야”라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마법처럼 근심걱정이 달아날 게 분명하다.
“통역사가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니?”
“네, 그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아직 통역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아. 힘들게 준비해서 멋들어지게 통역을 마쳐도 그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노고를 몰라줄 때도 많고. 하지만 난 언젠가, 곧 통역사가 ‘사’자 대열 직업에 오를 거라 생각해. 지금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말이야. 조선시대 중인인 의관, 율관, 산관이 지금의 의사, 법조인, 회계사, 즉 ‘현대의 귀족’이잖아. 그 가운데 하나인 역관이 지금의 통역사야. 자부심을 가지라는 얘기야.”
사실 한국에 통역사가 활동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9년 개원한 외대 통대가 1980년대 초부터 통역사를 배출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이후 외국 기업과의 프로젝트가 늘면서 통역시장이 커졌다. 특히 1991년 걸프전 때 CNN 생중계를 동시통역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