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골인’을 위해 철저히 시험유형에 맞춰 준비하기로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 모든 고시(‘통역고시’라 치고)가 그렇듯 장수생이 되면 ‘고시 수렁’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소문처럼 떠도는 평균 준비기간은 1년8개월. 10개월 안에 ‘쇼부(승부)’를 본다는 계획을 잡고 전략을 짰다.
내가 공부해야 할 부분은 영한통역, 한영통역, 그리고 에세이. 긴 지문을 요약해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내가 구사해야 할 언어는 ‘막말’이 아닌 정제된 고급문장이다. 일단 6월까지는 단어, 문장, 구를 외워 어휘력을 늘리고, 8월까지는 한국어 뉴스 따라 읊기, 영어 연설문 외우기에 주력하기로 한다. 물론 영한, 한영통역 및 에세이 작성을 포함하는 학원 수업과 함께.
돌아온 수업시간. 학원 강사들 모두 통대 출신으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이 수업은 영한 순차통역, 한영 순차통역, 문장구역까지 전방위로 이뤄집니다. 국내외 신문·잡지 등의 소스를 활용해 정치, 경제, 문화, 연예 등의 주제를 아우를 겁니다. 아시죠? 영어만 잘해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다는 거.”
수업은 발표 위주로 진행됐다. 지문을 듣고 난 뒤 바로 영어로 옮겨 발표해야 한다.
‘동물도 남을 의식할까. 동료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보고 듣는지 알까. 감정이입이 가능할까. 감정이입은 지극히 인간적인 속성이라고 여겨왔다.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감하는 능력은 인간관계의 바탕이 되며, 인간만이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는다고 간주했다….’
강사가 읽어준 지문을 듣고 바로 영어로 옮겨야 했지만 나는 입 없는 사기주전자처럼 굳어버렸다. 받아쓰라면 일필휘지일 것 같은데…. 일단 ‘메모리 스팬(기억의 범위)’이 부족했다. 길게는 5분가량 되는 지문을 구성을 잡아 기억하는 훈련이 돼 있질 않았다. 여러 학생 앞에서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라 ‘버벅’댄 뒤 창피하고 발표가 부담스러워 학원가기가 꺼려질 만큼 절망했다. 책상에 코를 푹 박은 내게 강사가 한마디 던졌다.
“언어는 ‘철판’으로 하는 거야.”
[출처] [통역사] 통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작성자 바르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