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훈 (frigate)
태권도 가라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1993-08-21 11:44 114 line
우선 오해하시는분들이 많을 같아 몇자 적습니다. 저는 현재 태권도 수련중이고 분명한 한국인이며 과거의 일제의 만행에 대해선 누구 못지 않게 이를 가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체육책,각종 서적등에서 태권도가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 온 우리나라 고유의 무술이라고 듣고 배워 오셨을 겁니다. 또 일제시대엔 일제에 의해 억압받았고 해방후 그게 부활했다고 배우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현제 일본이 역사 왜곡을 하고 역사를 날조하는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시면서 지금 우리나라가 역사왜곡을 한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역사 왜곡을 한 유일한 부분이 바로 이 태권도의 역사적 발생과 발전 과정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말의 근거를 먼저 밝힙니다. 우선은 저희 아버지의 증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대한 태권도 협회 창설이전부터 태권도를 하셨고 당시 태권도계 주요인사십니다. 저는 우선 이 증언에 근거를 둡니다. 두번째는 태권도의 기법상 체계와 타무술의 기법상 체계비교를 근거로 한것입니다. 세번째는 우리나라 고유무술과 태권도간의 기법상 체계의 비교를 근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존재 하던 무술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단지 고려시대의 수박이나 조선시대의 태껸이 요즘 복원되어 일부 단체에서 보급중입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중국대륙의 영향과 자체적 발생으로서 고유 격기를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것
이 오키나와 공수(가라데)의 시초입니다. 물론 그당시 일본 본토에도 중국의 영향과 더불어 고유히 발생한 유기및 격기가 발생했습니다. 오키나와의 공수는 20세기 들어 후나고시란 사람에 의해 체계화 되었습니다. 이 후나고시란 사람의 공수가 송도관류 공수이고 그와 함께 강우류 공수가 있습니다. 이 양대 공수문파외에 송도관류에서 배우다 강우류로 이적하여 실전공수의 체계를 세운 한국인 최영의(일본이름 대산배달:오오먀마 마쓰다쓰)의 극진공수가 있습니다. 현재 일본 공수는 이 3대 문파가 존재한다 보면 됩니다.
이 공수는 일제시대 들어 우리나라에도 건너왔고 각 대학에 공수도 생기고 각지에 공수도장이 생겼습니다.
이당시만 해도 공수는 잔인한 살인무술처럼 비처져 유도나 검도에 비해 낮게 보여졌습니다. (사실 무술의 근본개념에 따라 이런 차별은 옳지 않은 편견이죠...)
당시 공수를 배운 한국인이 많았으며 해방후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공수 도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해방후엔 공수,당수 등으로 불리웠으며 얼마 지나 대한 태수도 협회가 생깁니다. (이게 만들어진 배경이 기가 막힙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당시 태수도 협회 이전에는 '공수' 를 배우셨고 대회 우승도 했습니다. 분명히 공수이고 그때 민족 고유 무술인 태껸과 이 공수는 기법상 닮은곳이 거의 없고 무술의 성격마저 완전히 다릅니다.
그 태수도 협회가 다른 공수및 당수 협회와 합쳐져 드디어 대한 태권도 협회가 창설되 ?품세를 새로 개정하여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현제의 대한 태권도 협회이고 이때 태권도가 만들어진 겁니다. 만들어 졌다고는 하지만 무술의 기법,체계를 모두 다시 만든건 아니고 기존 공수의 것에 품세를 변형시키고 이름만 바꿔 단것이죠 그리고 월남전까지 미국인들에게는 태권도라 안불리고 Korean Karate라 불리웠습니다. 한국식 공수란 이야기죠..
월남전때 태권도가 백병전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자 그후 태권도라고도 불리며 또 월남전 이후로 미국으로의 사범이민은 늘어납니다. (그래서 미국의 태권도 도장도 옛 공수식으로 가르치는 곳이이고 요즘처럼 발차기 위주로 가르치는곳도 있고 그렇죠..)
80년대 이후 늘어나는 대회와 스포츠화가 가속되어 기존 '무술'로서의 태권도는 스포츠처럼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로 이어져 온 겁니다.
[출처] 태권도 역사 토론을 위한 참고 자료 : 가라데 유입론자들의 논의 |작성자 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