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한 실내의 반주거용 주상복합 오피스텔.
짧은 반바지에 딱 붙는 티, 머리를 헤어밴드로 고정한 화란,
유리탁자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드림바디’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있다.
‘자연미인, 건강미인’ 컨셉의 드림바디 모델 선발 요강 떠 있고.
화란, 생수 마시며 모니터를 응시한다.
화란 요즘 자연 미인이 어딨어? 자연스러운 게 자연 미인이지!
노트북을 탁 덮는 화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 야경을 보며 몸을 쭉 늘려 스트레칭 한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화란의 모습.
길게 뻗은 팔다리가 아름답다.
78. 서울집 앞, 현관 앞 (밤)
한복 입은 채 스트레칭하는 수하.
헛둘헛둘- 무릎도 굽혔다 폈다 하고,
팔도 돌리고 목도 돌리고
수하 아~. 너무들 안 온다. 진짜 손전화 하나 사야 하는 거 아냐?
몸통 돌리기 하는데
들어오던 준희, 그 모습 본다.
준희 가지가지 한다. 달밤에 체조하냐?
수하 어, 왔어? (안쪽 보며) 안 계셔서..
준희 오늘 로펌 부부동반 회식이라 그랬잖아.
수하 어? 난 못 들었는데?
준희 (못들은 척, 수하를 밀치듯 하며 문 여는) 한복 뻗쳐 입고 나가 고생 좀 했겠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을 텐데?
수하 (얘가 뭘 알고 이러나?) ?!
준희 아무리 내가 안 전해줬어도 그렇지, 뉴스도 안보니?
이충하선수 귀국도 못했다는데 환영회는 무슨~!
준희, 픽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79. 서울집, 현관& 거실 (밤)
준희, 들어오는데
뒤따라오던 수하, 준희의 어깨를 잡는다.
수하 연락 왔었던 거야? 언제?
준희 어젯밤에 웬 노친네가 전화왔더라. 꼬박꼬박 애기씨~ 애기씨~
내 참, 가소로와서!
수하 …이준희, 너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냐!
준희 (얘 좀 봐라) !
수하 부모님 밑에서 부족한 거 없이 잘 자란 애가 왜 그렇게 비뚤어진 건데? 왜? 애기씨 소리 못들어서 서운해? 내가 애기씨라 불러줄까?
준희 허! 누가 그딴 소리 듣고 싶대? 웃겨 진짜!
수하 웃기니? 난 하나도 안 웃긴대? 지금 너한테 충고하는 거거든.
준희 누가 니 충고 듣고 싶대? 돌아가! 여기 우리 집이야!
수하 (아프다. 그러나 이내 마음 다지는, 빙글) 그래? 근데 너랑 나랑 아버지가 같다는 걸 잊었나 보구나? 딸이 아버지 집에 있겠다는데 누가 뭐래? 나, 여기 오래오래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어쩌니? 힘들어도 니가 좀 참을 수 밖에! (당당하게 이층으로 올라가면)
준희 (약 올라 미치고) 아우!!!
80. 서울집, 수하방 (밤)
침대에 주저앉는 수하.
분하고 슬프고 억울하고 바보가 된 느낌이다.
그러나 씩씩하게..
수하 아.. 괜히 진 뺐네. 배고프다!!
81. 황회장 집 전경 (아침)
황회장 (E) 고만 쳐먹어!
82. 황회장 사랑방
고가구와 화려한 보료 등으로 꾸며진 실내.
각각 밥상 하나씩 끼고 앉아 밥 먹는 황회장과 동규.
<황회장은 양반가에 대한 향수 때문에 독상을 고집합니다.
체신없이 식탁에 앉아 먹기보다는 사랑방에서 독상 받는 것이 고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황회장, 묵묵히 밥 먹고 있는 동규를 노려보는
황회장 이 놈아, 늙은 할애빈 애달아 죽겄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동규 (능글) 진지 드세요. 아침 안드시면 힘 못쓰신다면서요?
황회장 화안당은? 화안당은 어떻게 됐어? 왜 안사오고 미적거리는 겨?
동규 그건 포기하세요.
황회장 포기? 이 황만복이 사전에 포기란 없다 그랬지?
동규 글쎄, 그 황, 만자 복자 어르신이라 더 안 된답니다. 절대 안 판대요. 그러니 그만 포기하세요.
황회장 아니 왜? 이유가 뭐야?
동규 (느물) 아시잖아요.
황회장 (찔리는 구석이 있지만 큰소리) 알긴 뭘 알어? 돈 주겄다는데, 시세보다 높이 쳐주겠다는데 왜 안된다는 거여?
동규 (대뜸) 소!
황회장 (뜨끔) 소?
동규 네, 소요. 움머~하는 소! 이래도 모르시겠어요?
황회장 (얼른 밥 먹는 척하면)
동규 훔칠 게 따로 있지 남의 집 소는 왜 끌고 나와요? 그 옛날엔 도둑중에도 죄질이 제일 나쁜 게 소도둑이었다는데!
황회장 (울컥, 숟가락 탁 놓는) 이 놈아! 그 소가 없었음 지금의 탑그룹도 없는겨! 탑그룹이 없었음 니깟 놈이 이렇게 호강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어?
동규 그야 그렇지만, 화안당에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소 훔쳐 달아난 머슴이 집까지 사겠다고 나선 셈인데..
황회장 내가 일생에 얼매나 포한이 졌으면 이러겄어? 깔려 죽을만큼 돈이 많음 뭐혀? (울먹) 그 집 사랑채에 떡하니 누워보지 못하믄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은데!
동규 (그 모습에 약해지는) 아이 알았어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얼른 진지 잡수세요, 네?
황회장 (일부러 오버하는, 밥상 물리며) 밥은 먹어 뭐하나, 눈도 못감고 죽을 걸.. 에구, 칠십년 내 인생이 말짱 헛거구먼, 헛거야! (눈물빼면)
동규 할아버지, 할아버지 손자 황동규, 못믿으세요?
제가 꼭 소원 이뤄드린다니까요!! 저만 믿으세요!
83. 황회장집 정원 혹은 집 주차장
동규, 문 열고 나오며
동규 아, 어떡하냐? 그 애기씨 보통이 아니던데!
이때, 동규의 차 앞에 있던 유일,
획 뒤돌아서며 동규 앞에 수하의 핸드백을 내민다.
유일 어떤 년이야? 나 몰래 바람 피지 말랬지?
동규 (황당) ?
유일 (극적인 오버 연기)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말이나 하고 바람을 피지! 내가 그렇게 우스워!
동규 (늘상 있는 일인 듯 무심하게) 우리 서로 사생활 좀 지킵시다.
조카 차 뒤지는 고모가 어딨어? 그리고 말은 바로 합시다. 총각이 여자 만나는게 어떻게 바람이요? 연애지!
유일 그래서 연애하는 거야, 지금? (핸드백에서 수하의 주민증 꺼내 보며) 솔직히 불어! 이수하가 누구야?
동규 아, 있어. 대책 없는 애기씨. 고몬 신경 꺼-.
유일 어떻게 신경을 끄니? 이렇게 생긴 애를!
유일, 수하의 주민증을 내민다.
동규, 그 사진 보고 푸핫- 웃음 터지고..
사진 속의 수하, 한복에 댕기머리를 한 채 활짝 웃고 있다.
동규 (푸하하) 완전, 대박이다. 이 애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