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규, 들어오다가 방 중간에 쳐있는 발을 본다.
그 발 너머로 고운 자태의 수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아련히 보이는 수하의 고운 자태.
그 신비롭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동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기분인데..
수하, 공손히 머리 숙이면
동규, 저도 모르게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한다.
(수하는 한복만 입으면 대사도 고어투가 된다. 동규도 얼떨결에 수하 말투 따라하고.. 상상플러스 OLD & NEW의 패널-대감-들 말투)
수하 앉으시지요.
동규 예에.
동규, 수하와 비껴 놓여있는 방석에 앉는다.
수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규 (으잉?) 예???
수하와 동규의 동상이몽 대사 시작.
수하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저희 화안당은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안이씨 종택입니다.
아흔아홉칸 대갓집의 풍모를 그대로 갖추고 있지요.
동규 아 예. 정말 무슨 문화재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하 그렇지 않아도 나라에서 문화재 지정을 해주겠단 걸
저희 쪽에서 고사하고 있습니다.
동규 (의아) 아니 왜요?
수하 문화재로 지정되면 문짝 하나도 마음대로 고칠 수가 없거든요.
동규 (아하~ 그렇구나) 근데 손을 좀 보셔야겠던데요.
수하 (당황) 물론 담장이 아주 살~짝 내려앉고
기와가 쪼~끔 깨지긴 했지만
싹 바꿔주면 앞으로 500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동규 (끄덕인다) 예에..
수하 저어.. 그래서 말씀인데요, (눈치 살피는)
대출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
동규 (당황) 예? 대출이라뇨?
수하 (역시 당황) 대출 심사 때문에 오신 거 아닌가요?
동규 예? 아, 제가 물론 그쪽 일도 하고는 있습니다만...
수하 왕도 금융에서 나오시지 않았나요?
지난번에 그쪽에 대출 신청했었는데요..
동규 (오해가 있다는 것을 감지) !
동규, 명함을 꺼내 발 아래로 쑥 내민다.
수하, 고개 빼고 보면
동규 인사가 늦었습니다.
탑그룹 금융 재무실 장덕호대립니다.
(동규는 상황에 따라 심복부하인 장대리와 신분을 바꿔 활동합니다. 이로 인해 장대리가 재벌3세인 척 하는 게 몸에 배어 동규와 충돌하 기도 합니다. 나중에 동규가 신분을 속인 것을 두고 수하가 열받는 계기가 되기도..)
수하 (띵-) 탑그룹이라면, 화안당 팔라고 자꾸 전화하던 그?
동규 예, 맞습니다.
전화를 해도 너무 안 받으시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수하 (아, 골치야) !!!!
동규 휴대폰도 없으시다던데.. (떠보는) 아니죠?
일부러 안 가르쳐 주시는 거죠?
수하 (말투 확 바뀐다) 그딴 거, 안 키우거든요?
동규 (어, 말투가 확 바뀌네? 이 여자, 만만치 않다)
안 불편하십니까? 휴대폰 없이 사는 거? 갑갑할텐데?
수하 전혀~. 유구한 역사동안 휴대폰 없이 잘 살아왔거든요?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그만 일어나시죠. (먼저 일어나면)
동규 잠깐! 아직 용건이 안 끝났는데요?
수하 화안당은 절대로 못 판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동규 둘러보니 집에 문제가 많은 것 같던데..
이 참에 저한테 확 파시고
다른 집을 알아보시는 게 어떤가요, 이수하씨?
이때, 확 발을 젖히는 수하. 성격 나왔다.
싸늘한 표정으로 동규를 내려다보더니
버선발로 동규의 명함을 확 밟아 짓이긴다.
수하 종택의 의미를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이 집은 아무나 사고 팔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동규 (기분 은근히 상하는) 명함의 의미를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명함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 했거늘!
어지간하면 남의 면상에서 발 좀 떼시죠, 이수하씨?!
수하 어머? 어쩌나? 내 눈엔 그쪽이 사람으로도 안 보인다는 거~
동규 허! 조신한 애기씨가 말 짧게 끊어 가시네. 그럼 안되죠!
(수하 말투 흉내 내며 빈정) 경우가 너무 없다는 거~.
수하 (동규 앞에 바짝 들이대며) 종갓집 와서 집 팔라 그러는 건
무슨 경우냐는 거~?
동규 (당황해서 뒷걸음질, 그러나 이내 열받는)
이 애기씨 보통이 아니네~.
다 썩어가는 집 끼고 있지 말고 좋은 값 쳐줄 때 팔아요!
수하 됐네요! 이 집은 절대로 못 파니까 썩 꺼져요!
동규 그렇게는 못하죠~!
이 집 팔 때까진 한 발짝도 안 움직일 테니 그렇게 알아요!!
동규, 가부좌 틀고 앉으면
수하, 만만치 않게 쏘아본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