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길 지친 모습으로 옥사에 들어선다.
옥문 간수들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한다.
공길, 눈이 먼 채 형틀을 쓰고 앉아 있는 장생을 본다.
그저 바라본다.
공길, 간수를 본다.
간수 항아리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장생, 물바가지를 받아 마신다.
장생
간수 양반, 지금이 낮이요, 밤이요?
내 광대요.
평생 남의 흉내 내며 산 광대.
이거 누구 흉내 내며 죽어야 하나?
공길, 표정 없는 눈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장생
저기, 재미난 얘기가 있는데 함 들어 볼래요?
내 어려 종살이 할 때 일인데,
누가 겁 없이 안방마님 금붙이를 훔친 적이 있었어요.
주인 양반이 종놈들 죄 모아놓고 호통을 쳤지.
근데 나서는 놈이 없더라구.
엄동설한인데 좀 추웠겠수?
근데, 거 참 이상하지.
꼭 그 금붙이를 내가 훔친 것만 같더라구.
“어르신, 제가 훔쳤어요...”
그 말을 하는데 왜 오줌이 질질 흘러내리는지.
바지춤을 타고 그 뜨뜻한 오줌이...
뜨뜻한 게 어찌 그리도 시원하던지.
지금 꼭 그런 기분이야.
아주 시원해.
(사이)
근데 거 참 희한하네요.
이렇게 안보이니 보일 땐 못 보던 게 보여요.
죽으면 더 많은 게 보일라나?
(사이)
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진짜 맹인이 되서는 맹인 연기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게 정말 한이네.
진짜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데 말이요. 허허허.
공길, 하염없이 장생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