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다양한 필체의 언문으로 쓴 종이들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홍내관 품에서 엽전 꾸러미를 꺼내 모필꾼 앞으로 던져 준다.
모필꾼 엽전 꾸러미를 보고 씨익 웃는다.
홍내관 품에서 말려있는 두장의 종이를 꺼낸다. 비방서와 공길이 쓴 언문 방이다.
모필꾼 두장의 종이를 펴 나란히 놓고 본다.
71. 궁 어전-낮
중신들 얼굴이 무겁게 굳어 있다.
도승지가 상소로 보이는 종이 뭉치들을 잔뜩 받쳐 들고 있다.
연산
내가 상소 가져오지 말랬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도승지
(간곡하게)
전하... 어찌 언로를 막으라 하십니까?
연산
누가 언로를 막어?
(곁에 놓인 비방서 중 하나를 들어 읽는다)
상감이란 자는 향락에 눈이 멀어,
궁에는 기생이 넘쳐나고...
(다른 비방서를 들어 읽는다)
근자에는 천하기 이를 데 없는 광대들까지 곁에
두어 날마다 천박한 소극을 즐기니... 봐라.
내가 백성들의 옳은 말을 이렇게 직접 귀담아 듣고
있질 않느냐.
도승지
전하.
연산
(얼른 도승지의 말을 끊으며)
그러니 이제 홍문관과 사간원 같은 건
필요 없겠지?
안 그래?
이제 이렇게 내가 백성들의 말을 직접 들을
언로가 트였으니 말이다.
도승지
(간곡하게)
전하.
연산
(또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홍문관과 사간원을 없애라.
도승지
(애절하게)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연산
(또 말을 끊으며)
그리고 상소를 제일 많이 올리는 성균관,
성균관도 없애.
중신들, 연산의 폭정에 찍소리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처선, 그런 모습을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때, 어전의 문이 열리며 녹수가 들어온다. 손에 종이 두 장을 들고 있다.
연산, 의외다.
연산
(엄하게)
어전 회의 중이다.
녹수, 손에 들고 온 종이를 연산에게 내 보인다.
연산, 녹수가 건네는 비방서를 받아들고 읽는다.
연산
(조금 읽다가)
백성들의 비방서 쓰는 솜씨가 날로 나아지고 있구나.
녹수
잡았어.
연산
?
녹수
비방서 쓴 놈 말이야.
녹수, 또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공길이 광대들을 모으기 위해 쓴 방이다.
연산, 공길의 방을 받아 들고 무슨 의미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녹수, 턱으로 연산이 들고 있는 비방서를 가리킨다.
연산, 양손의 종이를 들어 번갈아 본다. 글씨체가 똑같다.
연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당혹한 표정으로 이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