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수, 연산에게 내쳐진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
근육에 경련이 일 정도로 살기가 오른 얼굴에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다.
홍내관(off-sound)
숙용마마.
녹수
잠깐!
녹수, 얼른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면경을 당겨 얼굴을 매만진다.
금세 아무 일 없었던 듯 보인다.
녹수
들거라.
홍내관, 들어와 녹수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홍내관
다음에 다시?
녹수
뭐냐?
홍내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언문이 적힌 종이를 내민다.
녹수
(귀찮은 듯이)
읽어봐.
홍내관
(곤란한 표정으로)
이것 참... (하며 입맛을 좀 다시는데)
녹수, 냉큼 종이를 빼앗아 든다.
잠시 읽던 녹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녹수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
녹수는 한낮 기생이었던 기집이 왕의 눈에 들어 궁에
들어간 후 온갖 방중술로 구미호 같이 왕을 홀려
국사를 어지럽히고...
또한 상감이란 자는 향락에 눈이 멀어,
궁에는 기생이 넘쳐나고 근자에는 천하기 이를 데 없는
광대들까지 곁에 두어 날마다 천박한 소극을 즐기니...
홍내관
매일 밤이 지나고 나면 도성이 그런 비방서로
도배가 된답니다.
녹수
어떤 놈 짓이냐?
홍내관
마마도 참,
그걸 알면 가만있겠습니까?
진작 잡아들여 죽였지요.
녹수
(잠시 생각하다 뭔가 떠오른 듯)
공길이 놈이 언문을 알까?
홍내관, ‘뭔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녹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