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off-sound)
이놈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연산, 공길의 손에 억지로 활을 쥐어 주고 물러난다.
김처선이 술상을 든 궁녀들을 이끌고 들어오다 황당한 표정으로 연산을 바라본다.
궁녀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긴장한다.
연산
(어서 쏘라고 활 쏘는 시늉을 해대며)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중신들이 피를
흘렸는지 아느냐?
공길,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김처선과 궁녀들 상을 놓고 나가려고 하는데,
연산
나가지마.
니들도 함께 놀자.
연산, 공길이 활을 쏘지 않자 자기가 화살을 잡아 자기 배에 꽂으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때 녹수가 문을 열고 들어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녹수
놀고 있네, 놀고 있어.
연산
이 년도 쏴라.
이년이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년이다.
어서 쏴.
연산, 화살을 녹수의 배에 꽂는다.
녹수 신경질적으로 연산의 손을 뿌리친다.
연산, 흥이 깨진다.
녹수
(공길에게)
이 놈!
감히 상감에게 이 무슨 짓이냐?!
연산
조용히 해!
녹수, 곤란해 하는 공길을 바라보다 다가간다.
녹수
(공길의 뺨을 만지며)
어머! 피부가 참 곱구나!
(연산에게)
당신도 만져 봤수?
얼마나 예뻐?
곱기도 곱고, 소극으로 눈엣가시인 놈들 죽일
빌미까지 만들어 주니.
하고는 나가려다 돌아서서,
녹수
저 놈 본래 기집이 아닐까?
소리면 소리, 몸짓이면 몸짓,
그거 없는 내관들도 저렇지는 않은데.
보고 싶지 않아? 벗겨보자.
(공길에게)
뭘 망설여?
남자 대장부라면 시원하게 벗어봐.
연산
그만해.
녹수
(연산의 말을 무시하며)
부끄러워?
그럼 우리 같이 벗고 놀까?
(하며 자기 저고리를 풀어 벗고
공길의 옷을 벗기려 한다)
공길, 녹수의 손을 잡고 못 벗기게 하며 구원을 청하듯 연산을 바라본다.
연산, 화난 눈으로 녹수를 노려본다.
공길, 녹수의 손을 뿌리치고 피하다 발이 걸려 연산 앞에 쓰러진다.
녹수
(집요하게 다시 옷을 벗기려하며)
가만있어봐.
연산
(얼음처럼 차갑게)
손대지 마.
녹수, 고개를 획 돌려 연산을 노려보다 더 거칠게 공길의 옷을 벗기려 한다.
연산, 광폭하게 녹수의 머리채를 끌고 문 쪽으로 끌고 가서 문을 연다.
김처선과 궁녀들, 황급히 빠져 나간다.
연산, 녹수를 문밖으로 내친다.
연산 문을 쾅! 닫는다.
연산,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잠시 문 쪽을 보고 섰다가 돌아선다.
돌아 서 있는 공길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려 한다.
공길
(연산의 손길이 닿자 격하게 몸을 빼며)
놔요, 이거.
연산, 사뭇 놀란다.
연산
(달래듯)
공길아.
공길
날 내버려 둬요. 제발.
공길, 도포를 벗어 내려놓는다.
연산
(힘없이)
공길아.
왜 그래?
사냥에서 죽은 광대 때문에?
공길
...
연산
광대는 또 뽑으면 돼.
공길
난 그냥 광대짓만 하고 살고 싶었어요.
그냥 그게 다예요. 그런데...
연산
(공길의 말을 자르며)
그래. 넌 그러면 돼.
내가 그렇게 해 줬잖아.
공길아, 놀자.
다 잊고 놀자.
아니, 놀면서 다 잊자.
그래, 인형.
연산, 공길에게 달려들 듯 다가와 인형을 찾기 위해 공길의 몸을 뒤진다.
공길, 연산을 밀친다.
연산, 뒤로 나자빠진다. 분노에 찬 표정으로 공길을 바라본다.
공길, 연산을 외면한다.
연산, 공길을 한동안 바라보다 뭔가를 조르는 아이 같은 표정이 된다.
연산
공길아, 놀자.
큰 연회를 열까?
그래, 널 위한 연회를 열자.
공길, 연산을 돌아보다 무릎이 꺾이며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공길
놔주세요.
절 놔주세요.
돌아갈래요.
연산
어디로?
연산, 처연한 눈빛으로 공길을 바라본다.
공길, 피하지 않고 연산을 본다.
연산
안돼. 이제 니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
연산, 공길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무너진다.
공길, 슬픈 눈으로 고개 숙인 연산을 바라본다.
문 밖, 김처선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