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과 중신들 모두 상복을 입고 있다.
연산
(약한 모습으로)
내 흥분을 가누지 못해 대왕대비마마와 선왕의 여인들을
죽였으니 이 어쩌면 좋소?
중신들 아무 말 않고 머리만 조아리고 있다.
연산
좀 나서서 말리지들 않고 뭣들 했소?
내 법도를 어겨도 이만 저만 어긴 게 아니니,
큰일 아니오.
도승지
전하~ 자식이 어미의 한을 풀어드리는데 어찌
법도를 논하겠사옵니까?
연산
내 맘을 알아주니 고맙소.
(성준에게)
영의정은 당시 관직이 뭐였소?
성준
(담담하게)
소신은 당시... 우승지였습니다.
연산
그래요?
그 당시 중신들의 반대가 대단 했겠소?
성준 이극균, 별로 흔들림 없는 모습이다.
연산
왕이 여인간의 질투에 놀아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하셨으니 중신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있었겠소?
안 그렇소?
성준
(의연하게)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 일은 여인들 간에
워낙 은밀히 벌어진 일이라 신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사옵니다.
연산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 숙인 중신들을 바라보다)
소극으로 어마마마의 한을 풀어 준 공길이란 광대에게
큰 상을 내려 치하하는 게 마땅하다 생각되는데.
도승지
지당하시옵니다.
전답을 합쳐 열 마지기와 베 오백필...
연산
아니, 아니.
그 정도로 돼나?
벼슬을 내립시다!
중신들(일제히)
전하~
연산
(중신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종사품 어떻소?
아니 되오?
중신들, 서로 눈치만 보며 침묵한다.
연산, 흡족한 듯 여린 미소를 띄운다.
연산
여봐라!
광대 공길에게 종사품 벼슬을 내려라!
그리고 크게 연회를 열어...
이극균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은 대왕대비 마마의
국상을 치르는 중이오라 연회가 불가하옵니다.
중신들, 나서는 이극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연산
내 정신 좀 봐.
깜빡 했소.
그래도 예로부터 임금이 새로 높은 벼슬을 내리면
함께 모여 인재가 중용된 기쁨을 나누는 법인데.
이극균
정히 그러하시다면 사냥을 열어...
이극균, 성준과 눈빛을 교환한다.
연산
사냥? 사냥은 안 된다 하지 않았소.
이극균
궁 후원에서...
연산
후원? 그래, 그 방법이 있었네.
아버지처럼.
근데 사슴 몇 마리 풀어놓고 재미가 있을까?
김처선, 이극균과 연산을 번갈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