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락원 광대들의 공연이 막 시작된다.
연산과 녹수 그리고 중신들, 앉아 있다.
연산, 옆에 앉은 자신의 외할머니 손을 다정하게 잡고 있다.
그 옆으로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도 앉아 있다.
챙챙챙챙~ 하고 경극 특유의 음악이 울린다.
땅재주를 하는 광대들이 큰 깃발을 날리며 화려한 아크로바틱으로 연산 앞을 휘젓고 사라지자,
어느새 경극 배우 분장과 복장을 한 칠득 팔복이 연산 앞에 나타난다.
어설픈 경극 분장과 차림으로 여장을 한 칠득과 팔복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다시 경극 분위기의 음악이 울린다.
칠득
(경극 톤으로)
오~늘 밤~엔 만~나려나.
꿈~에나 보는 홍~등.
팔복
오~늘밤이 삼~백일째.
독~수공~방 외~롭구나.
그 때 한 광대가 홍등이 달린 긴 대나무 막대를 들고 등장해 연회장을 누빈다.
칠득과 팔복, 이를 보고 환장을 해 홍등을 쫓아 지그재그로 달린다.
겨우 홍등을 잡았나 싶었는데, 휙- 빠져나가더니 저만치로 가서 멈춘다.
그 밑에 화려한 여장을 한 공길이 서있다.
칠득과 팔복, 홍등을 향해 얼른 달려간다.
홍등, 칠득과 팔복을 희롱하듯 이리 저리 움직인다.
칠득과 팔복, 홍등을 쫓아 쪼르르 달려 다닌다.
그때 왕 차림을 한 육갑이 나타나 공길 옆에 서자, 홍등이 공길의 머리 위에서 멈춘다.
칠득과 팔복, 육갑에게 갖은 섹스어필을 한다.
육갑, 잠깐 바라보는 듯 하다 고개를 돌린다.
칠득과 팔복, 실망해 고개를 숙인다.
육갑, 다정하게 공길을 데리고 홍등과 함께 저만치 자리를 옮긴다.
연산, 홍등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공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칠득
오~늘 밤도 공 쳤구나.
팔복
송~곳이나 꺼내시오.
칠득
얼마~나 찔~렀는지 송~곳 끝이 무~디구나.
다시 챙챙챙챙~ 하는 경극 음악.
황태후 역의 장생 나타난다.
홍등 밑에선 공길에게 눈을 흘기고 칠득과 팔복 쪽으로 온다.
칠득
태~후 마마. 억~울하오.
장생
못~난 년들.
칠득/팔복
(칠득과 팔복, 장생에게 달라붙어)
소~근 소~근, 쑥~덕 쑥~덕.
장생
말~을 해라. 이년들아.
칠득과 팔복,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장생에게 귀엣말을 한다.
장생의 눈이 반짝인다.
장생, 칠득과 팔복을 뒤에 달고 공길과 육갑 쪽으로 걸어간다.
공길과 육갑, 다가오는 장생을 보고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들처럼 잡았던 손을 놓는다.
장생, 양손을 벌리고 사뭇 인자한 표정으로 육갑을 바라본다.
육갑,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장생의 품에 안긴다.
장생, 아이를 다루듯 육갑을 품에 안고 다독거리며 공길 쪽을 못 보게 한다.
칠득과 팔복, 육갑의 눈을 피해 공길을 이지매 한다.
육갑, 잠깐 돌아본다.
칠득과 팔복, 육갑이 보는 걸 의식하고 얼른 자신들이 공길에게 맞기라도 한 것처럼 나뒹군다.
장생, 다시 육갑의 고개를 잡아 품에 묻는다.
칠득과 팔복 또 다시 공길을 이지매한다.
장생, 육갑을 놓는다. 육갑이 돌아보면 칠득과 팔복 다시 자기들이 당한 것처럼 나뒹군다.
장생, 뭔가를 사주하는 눈빛으로 육갑을 노려본다.
한 광대가 사약 사발을 들고 달려 와 육갑에게 건네고 사라진다.
장생, 뒤에서 육갑을 안고 육갑의 팔을 잡아 사발을 들게 한다.
그대로 움직여 공길의 앞에 사발을 내밀게 한다.
육갑
(주저하며)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어찌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약을 내리라 하십니까.
장생
(말리는 육갑 너머로 공길에게 헛발질을 하며)
요망하고 요망한 년.
여시 같은 네년이 내 아들을 홀렸구나.
장생, 인형을 조종하듯 육갑을 뒤에서 안고 사약을 내밀게 한다.
칠득과 팔복, 기쁨을 감춘다.
공길, 억울함이 가득한 눈길로 장생과 육갑을 본다. 억울함이 원망으로 바뀐다.
공길,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가지런히 땅에 깔고 사발을 받아 내려놓는다.
공길
황제의 사랑이 크고 크지만 그 사랑을 원하는
이 또한 많구나.
황제가 내게 친히 보약을 내리시니 내 어찌
받지 않으리오.
아들아!
다행히 목숨을 보전하거든...
연산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공길을 바라보고 있다.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 어느새 사색이 되어 연산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중신들 어느새 모두 얼굴이 굳어져 당황하고 있다.
공길
나를 황제가 거동 하는 길옆에 묻어 황제의
행차를 보게해다오. 아들아~
공길 사발을 들어 마신다.
중신들 사색이 되어 연산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연산 젖은 눈으로 쓰러진 공길을 바라본다.
연산의 외할머니, 입술을 앙다물고 외면하며 슬픔을 참는다.
공길, 깔아 놓은 겉 옷 위로 쓰러지려한다.
연산 어느새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와 쓰러져가는 공길을 안는다.
공길, 쓰러지다 연산의 손길에 순간적으로 놀란다.
공길과 모든 광대들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다.
연산, 공길을 안고 “어머니, 어머니...”하며 오열한다.
녹수, 연산의 모습을 예의 주시한다.
공길 숨죽이며 연산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연산, 공길을 품에 꼭 안고 공길을 느끼려는 듯 미동도 없다.
장생, 공길과 연산의 모습을 보고 놀라다가 조금씩 표정이 경직되더니 어느새 완전히 굳어버린다.
부들부들 떨며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이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어난다.
연산이 이들의 모습을 본다.
연산
(눈에 광기가 서려)
서시오.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 깜짝 놀라 멈춘다.
연산, 한걸음에 달려가 정귀인과 엄귀인의 머리채를 한데 잡고 연회장 가운데로 끌고 온다.
연산의 뒤에 내시들과 나인들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따른다.
김처선
전하, 고정하십시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연산 아랑곳 않고 곁에 섰던 의금부 도사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든다.
인수대비, 경악하고 달려 나와 막아선다.
인수대비
이, 무... 무슨 일이냐?
연산
이년들이 내 어미를 죽인 년들이오.
보고도 모르오?
인수대비
이 무슨 해괴한 일이요.
선왕의 여인들을...
연산
이년들이 모함을 하여 내 어미가 궁에서 내쳐지고,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었단 말이오.
인수대비
그게 무슨 말이오.
폐비 윤씨는 그 품행이 방자하고...
연산
입 다무시오.
내 어미를 두 번 죽일 셈이오.
잘 보시오.
연산 칼을 휘둘러 정귀인을 벤다.
인수대비
(연산의 팔에 매달리며)
무슨 짓이오.
연산
놔!
인수대비, 몸부림치는 연산의 머리에 받쳐 나가떨어진다.
연산 칼을 휘둘러 엄귀인을 죽인다.
땅에 넘어진 인수대비도 숨을 거둔다.
연산
들어라.
저 년들이 혀를 놀려 할마마마를 충동질했으니
당장 정가와 엄가 두 년의 혀를 뽑아라. 그리고
이 년들은 상을 치르지 못하게 하고
향후 그 성씨를 부르지 말게 할 것이며 이들의
부모 형제를 모두 잡아 장형 백 대씩을 때려 귀향 보내고
그 재산을 모두 몰수하라.
연산의 절규가 연회장을 가득 메운다.
모든 중신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광대들도 믿기지 않는지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다.
공길, 연산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장생은 연산의 살육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공길만을 굳은 표정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