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길과 장생은 한 구석에서 조용히 종이에 뭔가를 쓰느라 골몰하고 있다.
육갑
(다가와)
뭐 하는 거유?
장생
판을 크게 벌릴 거야.
광대들을 모아야 돼.
육갑 칠득 팔복, 뭔 소린가 하고 서로 쳐다본다.
육갑
뭔 소리야?
장생
중신들이 왕한테 우릴 당장 쫓아내라고 했데.
칠득
(반색을 하며)
잘됐네. 그럼 얼른 내빼자고.
장생
제 발로는 나가도 쫓겨서는 안나가.
육갑, 나서서 뭔 말인가 하려 하는데 팔복이 육갑의 옆구리를 툭 친다.
육갑
놔 봐.
하고 돌아보는데 어느새 아름다운 궁녀 두 명이 간식을 담은 쟁반을 들고 마루 앞에 서있다.
육갑, 아름다운 궁녀들의 모습을 보고 혹한다.
육갑
(칠득에게)
칠득아, 니가 좀 경솔한 거 같다.
궁녀들 음식을 마루 끝에 올려놓고 사라진다.
육갑 칠득 팔복, 궁녀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공길은 묵묵히 적던 종이를 들고, 일어나 벽에 붙인다.
광대들을 모으기 위한 (언문으로 적은) 방이다.
육갑 칠득 팔복, 바라본다.
공길
똑같이 써.
장생 종이와 붓을 육갑 칠득 팔복에게 나눠준다.
장생
도성 안에부터 광대들이 지날 만한 곳에
죄다 붙이자구.
육갑 칠득 팔복, 붓을 받으며 쭈삣 대는 모양이 아무래도 언문을 모르는 눈치다.
머뭇거리다 종이에 머리들을 쳐 박고 뭔가 열심히 끄적인다.
서로 남이 쓰는 걸 넘겨다 보려하며,
남이 보려하면 안보여 주려고 몸을 틀어 종이를 감춘다.
(jump)
장생, 방을 하나 완성해 공길이 써 붙인 방 옆에 나란히 붙인다.
장생
다 썼어?
하고 칠득과 팔복이 적은 종이를 들어 본다.
육갑은 얼른 자기가 쓴 종이를 뒤로 숨긴다.
칠득과 팔복 나름대로 언문을 따라 그렸는데 도무지 뭔 글자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장생 어이없어 한다.
육갑 나란히 붙은 공길과 장생의 방을 번갈아 본다. 글씨체가 꼭 같다.
육갑
(신기해하며)
어찌, 두 사람 필체가 한 배서 난 쌍둥이 마냥 똑같소?
장생
내가 공길이가 쓰는 언문을 흉내 내 쓰며
배워 그렇지.
칠득과 팔복도 신기해한다.
육갑
하여간 남 흉내 내는 건 타고 났어요.
장생
자.
하며 육갑에게 육갑이 쓴 방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육갑 망설이다 종이를 내민다.
모두 모여 육갑이 쓴 종이를 보다 까무러치게 웃는다.
육갑, 글을 모르니 그림만으로 희락원 광대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설명했는데 절묘하게 그럴 듯하다.
육갑
언문 읽을 줄 아는 광대가 어딨수?
다 내 생각이 있어서.
모두 웃음을 뚝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