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 있는 아악에 맞춰 무희들이 춤을 춘다.
중앙에 왕(연산)과 녹수가 춤이 재미없는 듯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좌우로 놓인 긴 탁자에 중신들이 앉아 있다.
연회장 뒤 쪽.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연산 신경질적으로 탁자를 거푸 내려친다.
무희들 당황하며 춤을 멈추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진다.
연산 손짓해 김처선을 불러 뭐라 한다.
김처선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처선
금일 연회에 맞춰 전하께서 친히 광대들을 불러
소극을 즐기고자 하시니,
함께 보며 모두 즐기도록 하라.
광대들의 공연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린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탈을 쓰고 장단을 치며 등장해 연회장을 돈다.
아악과 달리 흥겹고 신명나는 장단에 연산과 녹수, 관심이 동하는 눈치다.
공길과 장생 탈속에서 연산을 본다.
중신들, 광대들의 등장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린다.
장생, 꽹과리 장단으로 가락을 정리한다.
장생
어허~
유세차 갑자년 삼월 초하루,
길일을 택하여 나랏님을 모시고
탈놀음을 하려고 열의 열성에 각 자손이 모여 정성을
드리오니...
장생의 사설 이어진다.
(jump)
칠득(김내관) 보기에도 내시처럼 허리를 숙이고 종종 걸음으로 나온다.
팔복(홍내관) 뒤 따라 오며 부른다.
저자거리에서와 달리 긴장하는 빛이 역력해 둘의 움직임이 어색하다.
탈속에서 반짝이는 공길과 장생의 눈동자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jump)
공길 주위를 살피더니 주저앉아 오줌을 싼다.
칠득과 팔복, 숨어 엿보듯 한다.
팔복
저거 숙용 장씨 아닌가?
칠득
왜 아닌가. 근데 저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팔복
내 소문을 듣자하니 녹수 저 년이...
팔복 시선을 돌리면 사색이 되서 고갯짓을 해대는 칠득. 칠득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녹수와 눈이 마주치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다 장생을 쳐다본다.
장생, 긴장해서 어쩔 줄 모르는 칠득, 팔복에 전혀 웃을 기미가 없는 연산의 표정을 보고 낙담한다. 얼른 추스르고 예정에 없이 육갑에게 달려가 당황하는 육갑의 사타구니를 억지로 벌려 애기 인형을 꺼내는 장생. 연산 앞으로 달려간다.
장생, 진땀을 흘리며 연산을 웃기기 위해 연산의 면전에서 유난히 큰 액션으로 연기를 한다.
장생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디 보자.
이마도 내 닮았고, 코 큰 것도 내 닮았다.
어디한번 얼러보자.
둥~ 둥~ 내 아들.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느냐,
강풍에 날려 왔나.
어허 둥둥 내 아들.
소극이 끝났는데 연산은 끝내 웃지 않고 분위기 완전히 가라앉아 있다.
장생, 사색이 된다.
뒤에 선 육갑 칠득 팔복, 넋을 잃고 있다.
그때 공길이 갑자기 장생에게 쪼르르 다가가 즉흥적으로 에드립을 친다.
공길
그 애가 당신 씬 줄 아슈?
장생, 예정에 없던 공길의 행동에 당황한다.
장생
뭐? 너 왜 이래?
공길
(에드립을 계속 이어간다)
흥, 다 아는 소문을 당신만 모르는 구나?!
장생, 뒤늦게 공길의 에드립을 깨닫는다.
장생
(다시 흥을 내며)
그럼 이 애 씨가 따로 있다?
공길
내시 중에 불알 한쪽이 성한 놈이 있어
밤마다 후궁들하고 붙어먹었지!
장생
뭐야? 그 놈이 누구냐?
어서 일러라!
공길과 장생, 즉석으로 주고받는 대사가 호흡이 착착 맞는다.
공길
맨 입으로?
장생
요, 요망한 것.
그래 좋다. 입을 채워주지.
윗 입을 채워주랴, 아랫 입을 채워주랴?
공길
윗 입.
공길, 폴짝 물구나무를 서 사타구니를 장생의 면전에 댄다.
공길
자, 윗 입 대령이요.
가만히 지켜보던 연산,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포복절도한다.
녹수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중신들 천박한 광대놀음에 인상이 구겨진다.
공길과 장생, 연산의 웃음이 터지자 희열에 찬 눈빛을 반짝인다.
거꾸로 선 공길의 탈이 흘려 내리며 공길의 얼굴이 드러난다.
연산, 웃다가 탈이 벗겨지며 드러난 공길의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공길, 연산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몸을 바로 세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연산, 공길을 향해 걸어 나간다.
녹수, 걸어가는 연산을 본다.
장생 육갑 칠득 팔복도 얼른 몸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린다.
연산, 공길 앞에 다가와 선다.
연산
(공길에게)
고개를 들어라.
공길, 고개를 든다.
연산, 땀에 촉촉이 젖은 공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녹수, 공길을 바라보는 연산을 주목한다.
연산
니 이름이 뭐냐?
공길
공길입니다.
연산
(공길을 계속 바라보며)
여봐라.
내 이 광대들을 곁에 두고 내킬 때마다 불러
즐길 것이니,
궐내에 이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그 이름은, (잠시 생각하다)
그래, 놀 희(戱)에 즐길 락(樂)!
(일어나 큰소리로)
희락원으로 명하라.
공길과 장생 어안이 벙벙하다.
육갑 칠득 팔복도 마찬가지다.
연산 나가며 김처선을 바라보고 씨익 웃는다.
중신들 술렁인다.
김처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