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길과 장생 밭도랑을 걷는다.
장생 주위를 둘러보다 아무도 없자 공길을 끌고 밭으로 내려선다.
장생, 무를 하나 뽑아 이빨로 껍질을 벗기더니 공길에게 내민다.
공길, 비위가 상하는지 잠시 망설이는데 장생이 입에 쳐 넣는다.
공길이 한 입 베어 물자 장생도 먹는다.
8.어느 들길-낮
공길과 장생, 땅과 하늘이 맞닿은 길을 걷고 있다.
장생 저 만치 앞에 막대기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가 집어 든다.
공길을 돌아보더니 맹인처럼 막대기를 더듬어 짚으며 걸어온다.
공길, 장생을 멍하니 바라본다.
굳었던 표정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주위를 살피더니 막대기를 하나 집어 들고 맹인이 된다.
공길과 장생, 마주 걸어오다 부딪친다.
둘만의 맹인 소극(笑劇)을 한다.
공길
아야! 아 이놈아, 눈 달아 뒀다 뭐해?
장생
아 이놈아, 눈 달아 뒀다 뭐해?
공길
눈이 삐었냐?
장생
눈은 안 삐고 산 넘다가 다리를 삐끗했지.
근데 이 소리가 강 건너... 강봉사?
공길
이 냄시 들 질러... 봉봉사?
장생
아이고, 이거 반갑구만.
만나려고 하는데 자꾸 엇갈린다.
장생
이봐,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또 엇갈린다.
공길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또 엇갈린다.
장생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공길
아, 너 거기 없고 나 여기 있지.
엇갈리다 만난다.
장생, 장난스럽게 공길을 덥석 안는다.
공길, 장생을 뿌리치다 휘청하더니 한데 엉켜 언덕 아래로 구른다.
한참을 엉킨 채 구르던 공길과 장생, 몸이 멈추자 대자로 눕는다.
하늘이 높고 맑다.
장생, 얼굴 옆에서 풀을 뜯어 풀피리를 분다.
풀피리를 불다 허리춤에서 남녀 손 인형을 꺼내 공길에게 건넨다.
공길, 손 인형을 보고 반색을 하며 기뻐한다. 손에 낀다.
장생의 풀피리 소리 구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공길, 누운 채 손 인형을 움직이며 복화술을 한다.
공길
(여자 인형을 움직이며 여자 목소리로)
가지 마시와요.
(남자 인형을 움직이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도는 인생,
날 붙잡지 마오.
(여자 인형)
안돼요. 가긴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장생 풀피리 불던 걸 멈추고,
장생
(과장되게 굵은 목소리로)
대장부 가는 길을 막지 마라.
(몸을 일으켜 앉으며)
한양으로 가자!
큰 판에서 놀아야지.
공길, 일어나 앉아 장생을 쳐다본다.